우리는 한라산 등반 코스 중 제일 쉽다는 영실코스로 하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입구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30분이나 걸어야 했고, 택시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후기를 보았다. 설상가상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내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차 타고 온 사람들한테 우리 좀 태워달라고 말하자.”
친구 S가 당첨되었고, 실전에 대비해 연습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저희 입구까지만..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
S의 목소리 톤은 미묘하게 한 톤 더 높아져서, 억지로 일하는 간호사 말투 같았지만 사회초년생처럼 자신감 없어 보였다. 재미 삼아 상황극도 시작했다.
“네??? 제가 왜요????”
내가 질색하는 목소리로 S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고, S는 급하게 분노했다.
“시발… 못하겠어!!!”
상황극을 여러 번 반복하니 어느새 흙 묻은 신발을 터는 곳까지 내려왔다. 타겟을 찾아 매의 눈으로 눈알을 굴렸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소심 왕인 우리는 말도 못 붙일 것임을.. 그때 갑자기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가 총 3명이라 차 뒷자리가 좁은데, 그래도 괜찮으시면 입구까지 데려드릴까요?”
좋으면서 쪽팔렸다. 그 고마운 사람은 우리 바로 앞에서 산을 내려가던 사람이었다. 바로 앞에서 우리의 상황극을 전부 듣고 친절하게 제안해주신 것이었다. 뒷자리에 4명이 앉자 서로의 허벅지가 달싹 붙었다. 사탕이라도 드리려고 했지만, 그분은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창 너머에는 걸어가면 30분 이상 걸렸을 거리가 빠르게 휙휙 지나갔다.
사실 한라산에서의 히치하이킹은 내 인생 세 번째 히치하이킹이다. 첫 번째 히치하이킹은 뉴질랜드 와이헤케 섬에서 경험했다. 그곳은 대중교통도 없고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어려운 섬이었다. 하지만 히치하이킹을 하기만 하면 지나가던 차가 쉽게 태워준다는 블로그 후기를 보았고, 우리는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걸으면서 엄지만 내밀어도, 지나가던 차는 우리를 잘만 태워줬다. 차를 얻어 타며 외국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순천에서의 히치하이킹이었다. 여기는 와이헤케 섬이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역시 한국에서 히치하이킹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던 참에 어떤 차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오! 한국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긴 있구나. 이때는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히치하이킹을 제안받은 날, 숙소로 향하는 저녁 버스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받은 친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두 번의 히치하이킹을 이야기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자리를 양보받은 경험도 말했다. 강남에서 인천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광역버스에 서서 가던 중, 속이 미슥거려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자리를 양보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어떤 사람이 버스에서 큰 짐을 들고 있어서 자신이 대신 짐을 들어주었던 이야기를 말했다.
한라산의 히치하이킹은 우리를 뜻밖의 대화로 데려다주었다. 우연히 받은 친절과, 별 뜻 없이 베푼 친절이 계속 계속 떠올랐다. 우리 모두 친절을 받고, 베푼 경험이 아주 많았다. 우연히 받은 친절은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 깊게 새겨졌구나. 세 번째 히치하이킹을 겪은 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