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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Nov 03. 2024

미용실 집 딸

고3 영어 선생님의 별명은 브로콜리였다. 누구나 그를 보면 별명 한번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몸은 길쭉하게 말라서 브로콜리 줄기 같았고, 그 위에 빠글빠글하게 빽빽하게 솟아난 머리가 브로콜리 이파리를 닮았다. 할머니 머리에서나 볼 법한 뽀글 머리가 50대 남성의 머리라는 게 고딩들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였나보다. 브로콜리는 자주 나를 교무실에 불러서 참고서나 남은 문제집을 주곤 했다. 문제집을 잔뜩 얻어오면 애들이 나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했다.

“야 브로콜리가 왜 이렇게 너만 예뻐하냐?”

그럴 때면 브로콜리의 우스꽝스러운 머리가 우리 엄마의 솜씨라는 것이 들통이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브로콜리는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오랜 단골이었다.


엄마는 퇴근 시간마다 은행원이 되었다. 만 원짜리를 왼손에 뭉텅이로 들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빠르게 돈을 셌다. 은행원이 된 엄마는 내가 말을 시켜도 아무것도 안 들리는 사람처럼 입을 중얼거리면서 돈 세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근무시간 엄마의 현금통에는 만 원짜리와 천 원짜리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고, 거기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빼들고 과자를 사 먹으며 나는 자랐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한 엄마 덕분에 우리 집은 34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는 11살에 처음으로 내 침대와 내 책상이라는 것을 갖게 됐다.


엄마는 집에서도 머리카락과 씨름했다. 바로 브래지어에 박힌 머리카락을 빼내는 일. 바리캉으로 밀은 남자들의 짧은 머리카락은 앞치마를 해도 속옷까지 파고들었다. 브래지어까지 깊이 박힌 짧은 머리카락은 움직일 때마다 엄마의 살을 쿡쿡 찌른다고 했다. 엄마는 왼손에는 누런색 테이프를 들고 오른손에는 브래지어 와이어 틈새에 낀 작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말했다.

“어휴. 따가워 죽는 줄 알았네.”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태희이모가 농담으로 했던 말도 생각난다. 평범한 사람들은 물 위에 머리카락이 떠 있으면 물을 버리고 다른 컵으로 마시는데, 우리는 물을 후후 불면서 먹는다고. 그때 그 농담을 듣고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미용실 집 딸은 그런 머리카락에 익숙했다. 컵 위에 동동 띄어진 짧은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누런 테이프까지.


미용실에서 과자를 사 먹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미용실 말고 다른 미용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하는 레이어드 컷을 해보고 싶어서 엄마 몰래 다른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왔다. 부모님 몰래 놀이터에서 담배 피우고 집에 돌아온 고딩이 이런 기분일까? 엄마가 내 달라진 머리를 알아챌까 봐 집에서 머리를 하나로 꽉 묶었다. 그날 과일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과일을 한쪽 어금니로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사과 먹어봐, 너무 달다.” 고 말하는 엄마. 그날 다시는 엄마 몰래 다른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이제 브래지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지 않는다. 그리고 돈다발을 뭉텅이로 들고 오랫동안 세지도 않는다. 엄마의 미용실에는 더 이상 태희 이모도 없다. 하지만 지금도 브로콜리는 머리를 볶으러 미용실에 온다. 브로콜리가 가게에 오는 날이면, 꼭 엄마는 그 소식을 전해준다. “야 오늘 브로콜리 파마하러 왔다.” 나는 그 말이 꼭 “야 엄마는 아직도 잘 나가는 미용실 사장님이야.”라는 말처럼 들린다. 나도 언젠가 브로콜리처럼 뽀글뽀글한 머리가 필요한 나이가 될 것이다. 미용실 집 딸은 그때까지 엄마가 여전히 잘 나가는 미용실 사장님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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