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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Apr 04. 2022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터졌다. 일복. 직장을 옮긴 뒤로 물밀듯이 일이 들어오고 있다. 사내 업무뿐 아니라 갑자기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팡팡 터지는 것이다. 그냥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하려고 그러는 건 일종의 병일까?




1. 에세이를 기고합니다


회사에서 나의 직책은 콘텐츠팀의 BO, Business Owner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결국 콘텐츠 관련된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두 혼자서 책임지는 자리다. 어디 컨펌을 받을 곳도 없이 알아서 의사결정을 해서 추진해야 하는 외로운 직무. 그래서 이번에 콘텐츠 개편 기획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서 새로 짰다. 당장 다음 주부터 바로 실행이다. 에라,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바꾸지 뭐.


새로 도입되는 콘텐츠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다가, 최근 배민에서 시도한 <소설가가 입사했다>라는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소설가 박서련 님을 <우아한형제들>의 일일사원으로 모시고 브랜딩 콘텐츠를 의뢰한 것.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무작정 따라 하기로 했다. 아마추어 작가(나)의 시선으로 파헤친 스타트업 에세이, <작가가 입사했다>.


물론 나는 정식 작가도 아닌데 나서서 떠든다는 게 여전히 두렵긴 하다. 무슨 욕을 먹을 줄 알고. 그러나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애초에 사람들이 내 글을 얼마나 주의 깊게 읽겠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민과 비교하면 우리 회사는 한참 급이 딸리기도 하니까. 나만 꿀리는 건 아니잖아.

   

여하튼 스타트업이 돌아가는 면면이 나에게는 아주 신선한 자극인데, 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 기록으로 남기려도 한다. 반응이 좋으면 브런치에 연재를 할 수도. 커밍 순.




2. 도서 큐레이팅도 합니다


최근에 사촌 누나가 역삼에 ‘책바(bar)’를 낸다며 소식을 알려왔다. 그러면서 술은 언제든 공짜로 줄 테니 도서 큐레이션을 해달라는 제안을 던졌다. 오! 직장 근처에 위스키 홀짝대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니? 거기 책장을 내 맘대로 꾸밀 수 있다니? 언젠가 서점을 여는 것이 꿈이었고, 올해 꼭 해야 할 일로 ‘나만의 도서 추천 리스트 만들기’를 꼽은 나에게 이 기회는 운명과도 같았다.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오케이! 만약 사람이 아무도 안 오더라도 내가 가서 책 읽고 술 마시고 글 쓰는 공간으로 쓰면 되잖아.

아직 단장 중인 공간

그래서 요즘은 틈틈이 책 리스트를 정리 중이다. 도서 선정 기준은, 1. 내가 읽어본 책 중에서 2.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책.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꽤 많다.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 주말에는 부지런히 책바나 독립서점을 다니면서 시장 조사를 하고 있는데, 주인의 마음으로 공간을 관찰하니 이제까지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식 론칭까지 1개월 남짓,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미리 홍보를 좀 하자면, 컨셉은 도심 속 조용한 책바다. 어두운 조명 속, 재즈 음악과 책 넘기는 소리만 있을 뿐 대화 소리는 희미한 공간. 책과 위스키, 그리고 메모를 끄적일 노트와 연필 정도만 주어지는 곳. 이름하여 마이 리틀 케이브(My Little Cave), 줄여서 마리케. 이것 역시 커밍 순.


(저의 인스타 독서 계정 (@core_cure)에 오시면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대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 나눠주시면 적극 반영해보겠습니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요..!)




3. 사이드 프로젝트 자문까지 합니다


또 하나의 운명적 모먼트. 나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정부지원사업을 준비했었다. 주제는 바로 <암 환자를 위한 식이 정보 제공 서비스>. 혼자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사업계획서 검토도 받고 팀원 면접도 보고 설문지도 돌리고 했으나, 아쉽게도 중간에 접기로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뚜렷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 혼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나와 99.9% 똑같은 기획으로 정부지원사업을 준비하는 팀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격적인 프로젝트 론칭에 앞서서 의료 쪽 자문을 맡아줄 팀원을 구한다는 이야기였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 만나자고 했다.

작년에 사업 구상 때 했던 설문지

사업계획서를 훑어보니 정말 놀라우리만큼 비슷했다. 내 허접한 기획서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다는 점만 달랐다. 팀원들도 10명이나 되는 거대한 사이드 프로젝트 팀이었다. 그것도 개발자가 7명이나 포함된, 그야말로 보기 드물게 순도 높은 팀이었다.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프로젝트를 시작한 동기 역시 정확히 같았다. 아버지를 췌장암으로 떠내 보냈다는 것, 아버지의 암 투병 동안 음식과 관련한 어려움을 너무 많이 실감했다는 것. 역시 내가 생각했던 아이템이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일 년 전에 이들을 만났더라면,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그런 막연한 상상이 들기도 했다.


정말 미친 듯이 바쁘지만, 이 기회 역시 운명처럼 느껴져 힘을 보태기로 했다.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이지만 나의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제 내게 주말은 없다.



장기하의 신곡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파격적인 구성과 노랫말은 차치하고서라도―참 공감이 많이 가는 노래다.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장기하 본인이 타고난 베짱이여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타박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 자신도 일을 자꾸 벌이는 사람이어서 혼잣말처럼 뱉는 푸념처럼 들린다. 가만~ 있지 못하는 슬픈 운명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랄까. 몰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은 가고, 경험은 쌓인다. 어쨌든.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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