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맡은 지 1년 하고도 6개월을 바라보는 시점. 갑자기 조직 개편 소식이 들려왔다. 요지는 우리 팀이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더 규모가 큰 신규 사업에 내가 팀장으로 투입된다는 것. 예?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해서 1년을 낑낑대며 팀 빌딩을 했는데. 이제야 겨우 연차도 편하게 쓰고, 팀원들에게 일도 적극적으로 맡기고 조금 숨통이 트이려는데. 갑자기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람. 왜 하필 우리 팀이야? 왜 나야?
우리 팀으로 말할 거 같으면, 회사 내에서도 끈끈하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회사 초창기부터 근간이 되었던 교육 사업이자, 고참 팀원들이 많은 팀이었다. 전사의 사업 영역이 늘어나도 우리 팀의 본질은 바뀌지 않고 꾸준히 아이덴티티를 유지해 왔다.
실적도 좋았다. 매년 성장했고 영업이익도 났다. 나 포함 여섯 명이서 꾸준히, 인력 구성의 큰 변화 없이 성과를 쌓았다. 마이크로매니징의 대명사인 대표님도 우리 팀의 사업 디테일에 대해 특별히 터치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팀원들은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고, 나는 그게 퍽 자랑스러웠다.
그만큼 우리끼리 합도 잘 맞았다. 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타이트한 일정도 어떻게든 기한을 맞춰 냈고, 힘든 업무는 자발적으로 나눠서 맡았다. 우리가 준비한 프로젝트가 성과가 날 때면 모두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팀 내 개발 인력도 디자인 인력도 없이 오직 맨파워 만으로 피크를 찍었다. 다른 팀 사람들도 우리의 팀워크를 부러워했다. 나는 그게 퍽 뿌듯했다.
그러나 우리 팀의 성장성은 갈수록 둔화되고 있었다. 뾰족한 전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팀원들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각자 점점 존재감을 키우고 연봉도 올려야 하는데 작은 팀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긴 어려웠다. 열심히 하는 것과,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다르다. 운 좋게 올해 팀이 유지된다고 해서 내년에 크게 나아질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회사는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 분명했다. 막상 그때는 다른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다 누군가는 목표를 잃고 이탈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결국, 팀을 없애는 결정에 동의했다.
우리 팀 사업은 다른 팀에 흡수되고 팀원은 네 갈래로 쪼개졌다.
- 기존 사업을 들고 A팀으로 흡수되는 인원
- 더 적합한 역할을 맡기 위해 B팀으로 넘어가는 인원
- C팀의 안정화, 개인의 직무 전환을 위해 차출된 인원
- 나와 함께 신사업을 하기 위해 D팀을 꾸리게 된 인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갑작스럽게, 그러나 덤덤히 조직 개편 소식을 전했다. 어떤 이는 눈물을 보이고, 어떤 이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원망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분명 잘했는데. 성과도 났는데. 우리에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해. 다들 이런 억울한 마음이었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각자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선택입니다'는 말엔 실체가 없었다. 실체가 있는 건, 2년 넘게 가족보다 더 자주 보던 팀원들이 한순간에 흩어져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이건 분명히 징벌은 아닌데, 어떤 조치보다 가혹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당면한 일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했다. 팀원들의 새 팀장과 면담을 잡았다. 기존 사업을 인수인계하기 위해서. 그리고 팀원들의 유연한 적응을 위해서. 그 와중에 나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신사업도 파악해야 했다.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팀원 모두와 일대일 면담을 했다. 나는 차분히, 그러나 분명하게 팀을 쪼개는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소속이 달라진다면 어떤 역할이 가장 자신 있는지,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개인의 선호가 조직의 당위에 우선하긴 어려웠지만, 일단 들었다.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내가 신경 써줄 수 있는 부분, 각자가 앞으로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 모든 일이 일주일 안에 일어난 일이다. 마지막 면담까지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 '팀이 사라진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나를 무겁게 했다.
결국 끝에 가서는 사실만이 남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는 일은 잘했지만, 팀은 지키지 못했어. 못했어. 못했어. 지키지 못했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그깟 팀, 여섯 명짜리 조그만 스쿼드 하나를 지키는 게 뭐라고. 그걸 못했냐.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연장전에서 골을 먹힌 골키퍼 같은 마음이 된다.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코스였다고, 그 누구라도 놓쳤을 거라고 선수들이 암만 위로해 봐도 소용이 없다. 결과적으로 내가 막지 못했고, 팀은 다음 라운드에 가지 못했다. 말했지만, 결국엔 자초지종이 아닌 하나의 사실만이 남는다.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리더였는가. 면담에서 한 팀원은 그동안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며,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팀이 달라져도 가끔 일대일 면담을 하자고 요청한 팀원도 있었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팀원들도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그렇게 못된 팀장은 아니었구나. 막 꼴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구나. 동시에 좌절했다. 팀원들을 지키지 못한 팀장만큼 나쁜 팀장이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내가 회사에서 돋보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팀원들 덕분이었다. 입사 연차도 중간이었고 나이로도 아래에서 두 번째였지만, 나는 항상 팀장으로 존중받았다. 가끔 감정적인 피드백을 할 때도 있었고, (팀장의 의무인) 개인 면담을 게을리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팀원들은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무한한 신뢰를 줬다. 나는 분명히 그들 덕에 성장했다. 팀으로 일하는 경험을 했고, 작은 조직을 이끄는 귀중한 커리어도 생겼다. 업무뿐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을 때 가장 먼저 위로해 준 것도 팀원들이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준 것도 팀원들이었다. 참 감사한 인연이다.
나는 (우리 팀과 함께 한 덕분에) 성과와 리더십을 인정받고 신사업을 맡게 됐다. 나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우리 팀원들도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팀으로 간다. 그들에게도 새로운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는 거다. 만족하는 사람도, 불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될 일이다. 지금 좋은 선택이 언제까지고 좋을 리는 없다. 지금 나쁘게만 보이는 선택도 언젠가는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후 평가는 결국 개개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맡겨져 있다. 나는 이제 내 잔소리를 들을 리 없는 그들이, 어디서든 빛나리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팀원들과 마지막 회의를 진행하면서 말했다. (어차피 같은 층에서 매일 만나게 될 거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빈다.
"함께 해서 즐거웠고, 정상에서 만납시다."
주 40시간, 누적 20,000시간 넘도록 함께한 콘텐츠팀 팀원 여러분 덕분에 많이 배우고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