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소멸하는가? 진화하는가?
주) 이 글은 완성 버전이 아닙니다. 앞으로 새로운 아이디어, 더 깊은 생각, 바뀐 의견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다듬어갈 예정입니다.
“A대학교, 2020년 2학기 수업을 100% 온라인으로 한다고 발표”
“B대학교는 내년 여름까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기로 결정”
“C대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일반인에게도 공개”
최근 이런 기사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학이 처음 등장한 지 대략 1천 년이 되었고, 근대 대학이 등장한 지는 대략 2백 년이 되었다. 근대 대학 2백 년 역사 동안 대학 교육에 큰 변화는 없었다. 대학 교육의 수요자(일차 & 이차), 공급자 모두 대학 교육 변화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토로해왔으나,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는 인간의 선택이 아닌 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작되었고, 그 변화는 이제 대학을 진짜로 탈바꿈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대단한 경험이나 식견은 없기에 큰 목소리를 낼 입장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상상해본 대학의 변화 방향, 포스트코로나 대학의 모습을 거칠게 그려본다.
포스트코로나 대학, 학생은 이렇게 배운다.
학생의 배움은 크게 네 영역에서 발생한다. 큰 두 축은 온라인/오프라인, 비실시간/실시간이다. 이 두 축이 교차하며 온라인&비실시간, 온라인&실시간, 오프라인&비실시간, 오프라인&실시간의 네 영역에서 배움이 발생한다.
첫째, 온라인&비실시간을 통해 공통,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대규모의 상호학습을 이뤄낸다. 일타 강사의 강의, TV강연 콘텐츠처럼 초단위로 계획되고 섬세하게 편집된 영상으로 공통, 기본 지식을 학습한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 장소, 매체를 선택해서 학습한다. 영상의 어떤 부분을 오래 봤는지, 반복해서 봤는지가 자동으로 기록되고 분석된다. 학습에 관한 과제를 수행해서 올리면, 온라인을 통해 조교, 교수, 다른 학습자들로부터 광범위한 피드백을 비실시간으로 받는다.
둘째, 온라인&실시간을 통해 소규모 상호학습을 진행한다. 정해진 시간에 소규모의 동료 학습자와 교수를 온라인에서 만난다. 교수는 학습한 내용에 관해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고 학생은 이에 답한다. 반대로 학생이 묻고 다른 학생이나 교수가 답하며 토론한다. 대규모 토론이 아니어서, 학생 중 그 누구도 방관자나 무임승차자가 될 수 없다. 교수는 학생이 사전에 시청한 영상에 관한 기록을 보고, 간이 테스트나 추가 자료를 제시할 수도 있다.
셋째, 오프라인&비실시간을 통해 개인별 인포멀 학습과 팀단위 실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온라인 학습이력을 바탕으로 교수가 제시한 개별화된 미션 중 일부를 수행하거나, 학생 스스로 더 호기심이 가는 영역을 공부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학습이력상 이 학생은 A, B, C, D 중에서 두 개를 더 공부해야 한다고 교수가 제시하면, 학생은 이중 본인의 호기심에 따라 두 개를 선택하면 된다. 원한다면 네 개를 다 해도 좋다. 또는 부족한 부분, 호기심이 가는 부분을 학생 스스로 파악하고 “나는 OOO주제에 관해 ~~~하게 공부해봤다.”라고 교수에게 설명하고, 교수가 이런 학습의 적절성을 판단해주면 된다. 오프라인&비실시간에서의 팀단위 학습은 실제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실제 사회현상에 관해 전공영역별로 수집된 문제를 놓고 일정기간 동안 팀단위로 해결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대학 소재지의 여러 기업, 기관, 지역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수집한 후 그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방식이다.
넷째, 오프라인&실시간을 통해 소그룹의 실습을 진행한다. 대학에서의 기존 실습은 적은 수의 교수, 조교가 많은 그룹을 동시에 관찰하며 챙겨주는 구조여서, 그룹별로 개인화된 피드백을 충분히 받기 어렵다. 이상적으로는 한 팀이 한 명의 교수로부터 실습의 전체 과정을 밀착해서 지도받을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대학, 교수는 이렇게 가르친다.
교수의 지도는 크게 네 영역에서 발생하며, 학생의 경우와 동일하게 온라인&비실시간, 온라인&실시간, 오프라인&비실시간, 오프라인&실시간의 네 영역이다.
첫째, 온라인&비실시간. 일부 교수만 이 작업에 참여한다. 여러 대학의 동일 전공에 속한 모든 교수가 같은 주제로 비슷한 강의 영상을 만드는 현재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영상을 통한 지식 전달력이 뛰어나고, 이런 작업에 익숙한 일부 교수가 전문 인력의 지원을 받아서 방송 수준의 강의 영상을 제작하고 공급한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교수는 다른 세 영역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로 참여한다. 대신 대다수의 교수들은 다른 세 영역에 집중한다.
둘째, 온라인&실시간. 한 명의 교수가 30명을 가르친다고 가정하자. 이들을 5~6개의 팀으로 나눈다. 교수는 여러 팀이 아니라, 한 번에 한 팀과만 온라인으로 소통한다. 한 주 수업이 3시간이라면, 한 팀당 대략 30분씩 격주로 온라인에서 소통할 수 있다. 온라인&실시간 소통을 격주로 운영하는 이유는 다른 한주를 오프라인 활동에 배정하기 위함이다.
셋째, 오프라인&비실시간. 오피스아워를 가변적으로 운영하면서, 학생들과 오프라인에서 개인, 팀단위 미팅을 갖는다. 개인별 인포멀 학습을 지도하고, 팀단위로 실전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파악하여 피드백한다.
넷째, 오프라인&실시간. 이 시간에는 온라인&실시간과 같은 맥락으로 한 명의 교수가 여러 팀의 실습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팀의 실습만 밀착해서 깊게 관찰하고 지도한다. 격주로 진행한다.
포스트코로나 대학, 대학은 이렇게 운영한다.
첫째, 강의실을 중심으로 한 물리적인 공간은 현재의 1/2만 있으면 충분하다. 오프라인 강의가 1/2로 감소하며, 오프라인 강의의 규모도 전체가 다 모이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 단위의 실습, 미팅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주요 대학은 공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부분 대학에서 공간에 상당한 여유가 발생한다. 공간을 지금보다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학이 변해야 한다. 그리고 잉여 공간을 더 다양하게 외부와 공유해야 한다. 일반인들의 소규모 학습 모임에 대학의 공간을 낮은 비용으로 공유해주고, 그런 서비스를 통해 대학 내부 학생, 교수와 외부 인력 간 네트워킹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온라인 학습 콘텐츠를 제작하고, 운영하며, 분석하는 인력과 장비가 확충되어야 한다. 공간 확충과 관리에 투자하던 자원을 이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과목별 시수, 수업 운영을 유동적으로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수업은 2, 3학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모든 수업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서 발생해야 한다. 기존 제도는 배움이 온라인/오프라인, 비실시간/실시간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장애 요인이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공과목 두 개를 묶어서 5학점, 6학점으로 편성하고, 학생 입장의 이수 여부나 교수 입장의 수업 진행 여부를 평가하는 방법도 온라인/오프라인, 비실시간/실시간이 교차하는 네 개 영역에 맞게 변해야 한다.
넷째, 학생의 범주를 더 넓혀야 한다. 학생 수 급감으로 많은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의 입학을 장려하고 있다. 이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앞으로는 평생교육, 기업구성원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운영 중인 직장인 대상 특수 대학원, 대학 내 평생교육원을 규모 면에서 확충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 운영 방식을 그들의 수요에 맞게 대폭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