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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n 28. 2024

팬덤에 유린되는 가치

SON 아카데미 아동 폭행 폭언 논란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로 유명한 손웅정이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당했다. 손웅정은 자신의 방식이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시인하는 말투를 뱉으면서도 잘못 알려진 사실은 바로 잡겠다는 입장이다. 그 말의 꼬리를 물고 고소한 학부모가 손웅정에게 합의금 5억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풀렸다. 이건 공익적 가치가 없는 쟁점이다. 합의금을 얼마를 요구했건 SON 아카데미에서 폭행과 폭언이 일어난 것이 없는 사실이 되지 않는다. 지엽적인 사실을 폭로하며 여론의 타깃을 고소인에게 돌리고 일방 가해가 아닌 쌍방 분쟁으로 전황을 재편하는 논점 흐리기다.


눈에 익은 광경이다. 이름난 유명인이 분쟁과 폭로에 얽혀 ‘나락’에 가 버릴 위기에 처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지며 여론전의 지옥문을 연다. 하이브와 분쟁에 빠진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개통령’ 강형욱은 자신이 운영하던 반려견 훈련소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인권과 노동권 침해,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입을 모아 외쳤다. 고작 한 달 뒤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영웅을 키워낸 장본인으로 손흥민만큼 유명한 손흥민 부친이 송사에 휘말렸다.


일련의 사태들은 공모라도 한 듯 유사한 줄거리로 흘러갔다. 폭로와 분쟁이 발생하고, 유명인이 코너에 몰리고, 유명인의 성명이 기자회견이나 유튜브 영상 혹은 ‘팩트 체크’ 기사의 형식으로 나오면, 여론이 반전된다. 유명인을 지지하는 쪽으로 여론이 쏠리거나 적어도 50:50의 싸움으로 탈바꿈한다. 그들이 강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팬덤은 입장이 나올 때까지 “중립 기어”를 권유하고 다니며 여론이 반대 방향으로 넘어가는 걸 저지한다. 그러다 입장이 나오자마자 기어를 풀고 유명인의 주장에 호응한다. 무엇보다 공통적인 전략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 바꾸기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이 도리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 이들이야 말로 가해자라고 부르짖는다. 이때 동원되는 것은 선악 이분법의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의 내용물로는 공론장에 공고하게 자리 잡은 진영 논리와 혐오의 역학이 수북이 채워져 있다. 특정한 갈등 구도에 맞춰 폭로자를 악마화해 공분을 조장하고 자신을 동정하는 지지 여론을 포섭하는 것이다.


민희진의 경우 악마화의 대상이 ‘개저씨’였다. 젠더 프레임에 기반을 둔 진영 논리와 민족주의 반일 코드를 통해 여초·케이팝 커뮤 및 군중 여론을 회유할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강형욱은 민희진과 유사한 전략에 정반대 구도로 입장을 표명했다. 마치, 얼마 전 있었던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참고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자신을 고발한 직원의 성별이 여성이며 이들이 ‘페미’의 행태를 보였다고 폭로했고, 강형욱과 부인이 오히려 ‘페미’들의 반사회적 험담에 유린당했다고 호소했다. 해명 영상이 나오자마자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하며 직원들의 명예에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그들이 이미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의심하고 비난하는 여론 지형에 파묻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캔 음료수를 토해내듯이 여론은 인풋과 아웃풋의 기계적 작동을 통해 뒤집혔다. 진영 논리는 유명 인사들이 논란에 의해 낭떠러지로 몰렸을 때, 특정 진영에 망명 의사를 표명하며 즉각적으로 동아줄을 요청할 수 있는 SOS 신호가 되었다.


손웅정의 경우 파문의 형상이 크고 복잡하다. SON 아카데미의 상징적 자산 손흥민이 유럽 빅 리그 유명 선수인 데다 손웅정 역시 유럽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단지 국내에서 논란이 오가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건이 알려지고 있고 해외 언론과 여론이 가치 판단에 개입할 수 있다. 서구에서 아동 폭력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고 체벌 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손웅정이 손흥민을 때리면서 키웠다는 일화는 BBC 같은 영국 매체 등을 통해 유럽에 알려져 있다. 유럽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한국적 문화’나 ‘정서적 차이’처럼 소개되었지만, 같은 행태가 아카데미에서 자식 외의 다른 아동들에게 가해졌다면 더 이상 문화적 특수성처럼 미화할 수조차 없는 교육 시스템의 후진성과 폭력성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손웅정은 ‘합의금 5억 요구’라는 사실을 까발렸다. 고소인 측 목적이 돈에 있을 뿐이며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공익 폭로자로서의 ‘진정성’을 저격한 것이다. 여기서 상대방이 악마화되는 이미지는 자식새끼 때문에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개념 부모, 구체적으로는 ‘금쪽이’라는 인터넷 공론장의 빌런을 낳은 무 개념 부모의 캐릭터다. 손웅정을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는 고소인 부모의 저러한 이미지를 자식 농사에 성공한 아버지의 대명사로 통해 온 손웅정의 올곧은 이미지와 맞세워서 야유하고, 심지어 아카데미에서의 체벌과 폭언 역시 손웅정 고유의 철학이 깃든 훈육 방식처럼 합리화한다. ‘손흥민을 키운 대로 훈련받고 싶어서 찾아 가 놓고 왜 손흥민처럼 대하니까 고소를 하느냐’라고 한다. 이 얼굴 가죽 두꺼운 비논리는 코칭 과정에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전제가 되지 않은 언행과 행동은 결코 없었다”는 손웅정의 문제적 입장과 조응하며 이 사회 교육 방식과 스포츠 훈련, 아동 인권 및 폭력에 대한 개념을 과거로 거슬러 보내 퇴화시키고 있다.


어떤 이들은 민희진과 강형욱이 '해명' 한 번에 여론을 뒤집은 사실에 주목한다. ‘사람을 설득하기 힘든 시대에 설득을 해낸 사건’이라고 평가하는 논평도 있었다(‘민희진 쇼는 어떻게 흥행에 성공했나’, 한겨레 21). 내가 보기엔 그런 거 아니다. 저들은 사람들 생각을 바꾼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굳게 확신하는 생각의 코드에 맞춰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밀어 넣었다. 말했듯이, 사회적 갈등 구도로 그어진 진영 논리에 대한 편승이다. "개저씨"와 "한남 소추"는 그 구도로 차원 이동하는 '포탈'을 열어 준 주문이랄까. 사람들은 낯선 존재나 다른 생각에 감화되는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집착하는 프레임을 확대 재생산하는 진부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그 전장이 민희진에서 강형욱으로, 다시 손웅정으로 변주됐다. 이 과정은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행보를 걷는 인물이 페미니즘의 기수처럼 추종받고, 대다수가 피고용자에 속하는 기층 여론이 고용자 입장에서 피고용자를 모욕하고, ‘피해자의 순수성’을 심문하는 수구적 관념이 아동 체벌에 대한 논의를 덮어 버리는 가치 유린과 존재 배반을 불렀다. 팬덤 사회와 진영 논리의 유일한 목표는 우리 편 우상과 세계관을 방어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는 거기 부속된 채 아무렇게나 쓰이고 버려지고 뒤틀린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위인들에 의해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의제가 난도질당하며 분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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