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의 근일점 이동」
누구나 어릴 적에 과학실에 가서 태양계가 그려진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과 이제는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이 원이나 타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는 그림을 말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봤던 그림은 엄밀하게 말하면 잘못된 그림이다. 그림에서는 행성들이 똑같은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하지만 사실 행성들의 궤도는 일정하지 않고 조금씩 변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행성들의 궤도가 바뀐다니? 엄밀하게 말하면 궤도 모양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궤도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천문학에서는 이를 ‘근일점 이동’이라고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행성은 어떤 궤도를 따라 도는지 알아보자. 행성들의 궤도는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이다. 즉, 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행성이 하나만 있어서 그 행성만 태양 주위를 돈다면 행성의 타원궤도는 일정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계에는 다른 행성들도 있다. 그래서 다른 행성들이 주는 힘 때문에 궤도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타원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근일점이다. 근일점은 타원의 궤도에서 한 초점에 가장 가까운 점을 말한다. 근일점 이동이란 이 근일점의 위치가 계속 변하는 운동을 말한다.
행성의 근일점 이동은 천문학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뉴턴이 고전역학을 창시한 이래로 천체들의 운동은 천문학과 물리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천체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물리학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물리학의 여러 계산들을 천체 운동에 적용시켜 물리 법칙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뉴턴과 핼리이다. 뉴턴은 케플러의 조화 법칙을 만유인력 공식으로 증명하면서 만유인력 공식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핼리는 만유인력 법칙을 비롯한 여러 물리법칙을 사용해 성공적으로 핼리혜성의 궤도를 예측했다. 이처럼 물리학과 천문학은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수성 궤도의 근일점 이동이 계산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수성의 근일점 이동은 관측상으로는 5600초 정도였는데 계산상으로는 5557초가 나온 것이다. 수성의 근일점 이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가 지구의 세차운동이고 두 번째가 다른 행성(금성, 지구 등)의 영향이었다.
첫 번째 요인인 지구의 세차운동에 대해 알아보자. 다들 알다시피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다르게 자전축은 빙글빙글 돈다. 마치 팽이가 흔들거리면서 도는 것처럼 말이다! 이 운동을 세차운동이라고 한다. 자전축이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6,000년 정도이고 이 때문에 재밌는 현상들이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북극성의 변경이다.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을 무한히 늘렸을 때 자전축과 만나는 별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북극성은 작은곰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폴라리스이다. 그러나 지구의 세차운동에 의해 자전축이 움직이면 북극성이 바뀌게 된다. 먼 미래인 14,000년 정도에는 북극성이 거문고자리의 알파별인 베가가 될 것이다.
즉 세차운동은 우주를 바라보는 방향을 다르게 만든다. 이는 천체관측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돌아가므로 천체들의 위치가 같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이는 위치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수성의 궤도도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5025초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인 다른 행성들의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다른 행성들이 수성에 가하는 중력으로 인해 수성은 가만히 돌지 못하고 중력에 이끌려 원래 궤도를 벗어나게 된다. 이 값은 고전역학으로 계산할 수 있으며 계산 결과 525초가 나왔다. 그런데 나머지 43초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많은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는 했다.
19세기 중반, 이 문제를 프랑스의 물리학자 르베리에가 용감히 도전하기 시작했다. 르베리에는 1846년에 이미 천왕성의 궤도 변화를 계산해 해왕성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예측한 업적이 있었다. 천왕성의 궤도도 수성과 같이 변화하는데 당시 계산과 관측 값 사이에 오차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르베리에는 천왕성보다 바깥 궤도를 돌고 있는 미지의 행성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계산을 통해 해왕성의 위치를 예측했다. 르베리에가 위치를 예측하고 얼마 뒤 베를린 천문대에서 르베리에가 계산한 위치와 불과 1도 정도 차이 나는 곳에서 해왕성을 발견했다.
르베리에는 수성의 궤도가 변화하는 이유가 천왕성의 경우와 같이 미지의 행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행성은 태양과 수성 사이를 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미지의 행성에 Vulcan(벌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59년, 한 천문학자가 태양을 지나는 어떤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태양의 흑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흑점이 아니라 어떤 행성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행성은 수성이었다. 그러나 계산을 잘못해 이 행성이 수성이 아닌 다른 행성이라고 생각했고 학계에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르베리에는 이 소식을 듣고 이 행성이 Vulcan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Vulcan이 있을 궤도와 Vulcan의 질량을 계산했다.
그런데 우리는 Vulcan이라는 행성이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43초의 차이는 어디에서 있는 걸까?? 뉴턴이 만든 고전역학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행성이 더 존재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나오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를 통해 수성의 근일점 이동을 설명할 수 있다. 수성은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므로 태양의 중력이 휘게 만든 시공간을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미세한 오차가 생기는 것이고, 이 값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하면 정확하게 43초가 나온다. 이 계산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걸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종합하자면 수성은 근일점 이동을 통해 근일점의 위치가 계속 변하는데 그 값은 5600초이다. 이 중에서 5025초는 지구의 자전축 회전에 의한 값, 532초는 다른 행성들의 영향이고 마지막 43초는 태양 중력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 때문에 나오는 값이다.
이러한 근일점 이동은 수성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 모든 행성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왜 하필 수성을 사용했을까? 수성의 경우 이심률이 커서 근일점 이동을 관측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관측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외의 행성들에 대한 근일점 이동도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근일점 이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성들의 궤도를 닫힌 타원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근일점 이동 값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수성의 경우 1년에 1.56도 정도 근일점 이동을 한다. 근일점이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231년이라는 것이다. 즉 거의 일정한 궤도를 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혹시 천체역학에 관심이 있고 기본적인 수학적/물리적 배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하지 말고 Vulcan을 넣어서 수성의 근일점 이동을 계산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보정된 43초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쓰지 말고 사실은 Vulcan이라는 행성이 태양과 수성 사이에 있어서 43초의 오차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Vulcan의 궤도를 적절히 설정하고 중력퍼텐셜을 이용해 근일점 이동을 구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천체역학 교재에 실려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우주라이크 13호 배송 이벤트가 우주라이크 페이스북 페이지 / 인스타그램 에서 진행 중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WouldYouLike/
https://www.instagram.com/wouldyou_like/?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