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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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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Feb 02. 2020

서른, 길을 잃다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모든 대한민국 사람은 길을 잃었을 때 반드시 저 두 가지 노랫말 중 하나를 흥얼거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피식했다. 1년째 내 머릿속을 맴도는 가사여서. 아, 나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줘서.


방황하고 있다는 건 잘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그건 빠져나온 다음에야 뒤늦게 깨달을 수 있는 거고, 당장 매일 무기력에 빠져, 몇 시간을 자도 개운치 못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말은 아니더라. 일단 내 상황이 바람직한 방황(?)의 상태인지, 그저 용기가 없어 결단을 내리지도 못한 채 제자리만 맴도는 소인배의 모습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작년 말 첫 직장에 들어가고 3일째 밤에 일기를 썼었다. 일기에는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맞을까?'라는 문장을 적었다(일기가 어디로 갔는지 못 찾겠다. 3일 만에 이런 글을 쓴 걸 혹시나 가족이 볼까 봐 숨겼던 것 같은데, 나조차 못 찾을 만큼 꽁꽁 숨겨버렸다.). 타협의 결과였다. 이 선택의 가장 큰 동기는 결국 조급함과 합리화였다는 걸 3일 만에 깨달았지만, 또다시 무로, 아니 그보다 더 밑으로 단 며칠 만에 돌아가는 것이 무서워 인내를 택했다. 그래, 또 선택을 한 것이다. 잘 한 선택은 없고 잘 한 선택으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말을 품은 채.


다행히 인내는 꽤 오래갔다. 내 장기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버티는 것이라 어찌어찌 꾸역꾸역 버텼다. 사실 업무 강도가 그리 강하지 않은 탓도 컸으리라. 회사의 여러 조건 자체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고, 사람들도 좋았기에 나의 합리화와 인내에 힘이 더해져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2020년이 되며 다시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도 으레 이 나라 이 땅의 토박이인지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순간 이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엮이는 고민의 굴레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서른, 서른이라니...!


서른이 되는 순간 다음 10년을 설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섰다. 일단 지금 회사에서 열심히 일만 한다는 선택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단추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생각을 회사 다니는 내내 해 왔는데, 쉽게 태도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이직을 해야 할까? 어디로 이직을 하지? 언젠가부터 퇴근하고 똑같은 고민만 수없이 되풀이했을 뿐, 그 어느 하나 매듭을 풀지 못했다. 여러 선택지가 저 멀리 희뿌옇게 보이기는 했으나, 어떤 방향으로도 발걸음을 내딛을 엄두가 안 났다. 확신이 부족했다. 체력도 부족하다. 사무직 생활 1년 만에 6kg이 넘게 쪄 버린 탓이다.


일단 퇴사부터 할까? 마음이 이미 떠난 곳에 계속 적을 두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지금 회사에 쏟는 체력과 시간을 다른 곳에 쓰면 새로운 능력을 키워 더 내가 원하는 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도대체 원하는 일이 뭔지도 이제는 모르겠단 말이다. 나이가 계란 한 판이 되었는데 나는 왜 아직 나에 대해 이렇게 모르는 걸까. 나를 공부하는 학교까지 다녔는데 해가 갈수록 더 헷갈리기만 한다. 또 주변 어디나 일단 퇴사는 무조건 말린다. 퇴사부터 하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못 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다들 똑같은 말만 하는 건가. 천편일률적인 조언만 듣다 보니 확 삐뚤어져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역시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하는 건 이유가 있겠지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꾸려가고자 다짐했던 새해 첫 날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고민만 했다. 답답함에 주룩주룩 두서없는 방황기를 두드려 썼다. 방황기에 질서 정연함은 어울리지 않지 않은가. 중요한 건 그냥 쓰는 거라고 믿는다. 이 글은 내 방황이 의미 없는 제자리걸음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의 보잘것없는 몸부림이 이 땅의 또 다른 서른에게 조금이나마 안녕을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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