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마흔 살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바닷가 마을에는 '바다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섬이나 바닷가처럼 사람들의 삶이 온전히 자연에 기대어 있는 곳일수록 전설이나 미신이 많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수록 무언가에 기대야 하고, 스스로 금기를 만들어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불행이 피해 가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던 곳은 바다도 있었지만 온전히 바닷일로 생활을 하는 곳은 아니었다. 논밭과 산, 들, 바다가 모두 있는 곳이어서 바다에 대한 전설과 미신이 아주 강했던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어른들이 '바다가 울더니 초상이 났다.' 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참 기묘하고 신기한 이야기로 들렸다.
나이가 들수록 어른들의 말씀이 진리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예전에는 아빠, 엄마가 살아온 세상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르다고, 시대가 변했고, 엄마 아빠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맞고 내가 더 많이 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갈수록 결국엔 부모님 말씀, 어른들 말씀이 대부분 맞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잔소리들이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애정이었다는 것도 깨닫는다.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서 잘되길 바라고, 아프거나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큰만큼 잔소리도 많아진다.
어느 순간 그걸 아는 나이가 되니 '차 조심해라.', '밤늦게 다니지 마라.', '환절기에는 겉옷 잘 챙겨 입어라.' 하는 말들에 순순히 '네.'라고 대답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초등학생이야?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걱정을 해?'라면서 꼭 대꾸를 했었다.
하지만 이젠 이런저런 잔소리에 그냥 웃으며 '네.' 한다.
'진짜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하는 대답이다.
어른이 돼서도 '바다가 운다.'는 게 뭘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나 뜬금없는 미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런 이야기가 나온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작은 소도시로 다니게 되면서, 그리고 더 큰 도시에 살게 되면서, 그 바닷가 동네는 이제 가끔씩 가서 머무는 곳으로 나에게서 한 발 멀어졌지만 어린 시절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 전설은 가끔씩 생각이 났다.
추리소설 마니아로서 온갖 잡학 지식으로 수수께끼를 푸는 탐정들을 동경해왔기 때문일까.
명탐정 셜록, 포와로, 미스 마플, 코난처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자연스럽게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여기저기서 가끔씩 받게 되는 '갑작스런 부고'에 어떤 특징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였다.
종종 지인의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의 부고를 받게 된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부고는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많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쪄 죽을 듯한 폭염이나 얼어 죽을 듯한 혹한에 노환이 있으신 어르신들이 돌아가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더워도 여름은 초여름부터 차츰차츰 찾아온다. 겨울도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혹한이 오지는 않는다.
아무리 더워도, 아무리 추워도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해 간다.
우리 몸속에는 그런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를 생각해보면 아침엔 추운데 낮에는 땀이 날 정도로 더운 일교차가 심한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우리 몸도 적응하기가 힘든 것이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도 이 시기에 면역력이 떨어지고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평상시 보다 더 피곤하거나 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늘 이런 시기에 인사처럼 하는 말들이 있지 않은가.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세요.'라고.
'바다가 운다.'는 것은 아마도 평상시에 바다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는 말일 것이다. 어떤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환절기나 어떤 다른 이유로 기온의 변화가 급격해져서 평상시와 다른 대류가 일어났고 그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바람 소리가 생겨났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급격한 기온 변화가 평소 면역력이 약하거나 지병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바다가 울어서', '사람이 죽은' 게 아니라 '바다가 운 것'과 '사람이 죽은 일'은 둘 다 같은 원인으로 인해 나타난 두 가지의 결과인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바다가 울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연세가 많은 동네 할머니께서 밭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른들이 '며칠 전까지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일을 하느냐.'라고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리고 '엊그제 바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가을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아직 한낮엔 여름 같았던 그날의 날씨가 기억이 난다.
첫 번째 수수께끼를 푸는 데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걸 보니, 역시 난 셜록이나 포와로, 미스 마플 같은 천재적인 명탐정이 될 그릇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확실하게 알 게 된 것은 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 말씀이 가끔 '무논리'인 것 같지만 비록 인과관계의 오류가 좀 있을지라도, 참고하면 좋다는 것! 그리고 환절기에는 건강을 더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