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아닌 그냥 일기
내 능력에 넘치는 일들 때문에 요즘 매일매일 부러지고 있다.
회사 사정상(?), 아직 담당자가 없어서(?), 담당하던 사람이 퇴사해서...
이미 두 명분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몇 사람의 몫을 감당하라고 하는 건지...
회사의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던 일을 중간에 놓을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버티는 중이다.
매일 퇴사와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더 화가 나는 건
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다 잘 해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도 내가 이상한 사고 회로를 가졌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내가 생각한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견디는 것이 힘들다.
그게 내 마음을 부러뜨린다.
회사 일도, 인생의 어떤 문제도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
이 정도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 그쯤은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유연하지 못하고 삐그덕 댄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에 화가 나고 내 기준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괴롭다.
이제 좀 스스로를 그만 괴롭히라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잘해왔다고 다독이는 내 마음속에 자아와 자신의 무능력을 상황의 탓으로 돌리면서 회피하고 합리화하지 말라고 말하는 자아가 매일매일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매 순간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선택을 하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 믿음 역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는다.
끊임없이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이 싸움이 괴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도' 계속되기 때문인 것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처음부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어느 순간도 고민이 끝나지 않는 일이다.
매 질문마다 정답을 찾아서 적으면 끝나는 퀘스트가 아니라 끝없는 질문들의 연속이다.
심지어 결과물이 나와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남아 있다.
막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 질문들의 무게를 몰랐다.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시간이 흐르면, 경력이 쌓이면, 척척 그 질문들에 정답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었다.
그때가 되면 부족한 나 자신 때문에 이렇게 괴롭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나 자신' 때문에 괴롭다.
7~8년 차쯤 되었을 때 존경하는 출판계 선배가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고민한다는 건 앉아서 생각만 했다는 거야. 발로 뛰어. 그럼 뜬구름 같던 질문들이 걷히고 내디뎌야 할 한 발이 보여."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띵하고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그 선배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답답할 때, 고민될 때, 두려울 때 무조건 움직였다.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물어보고, 시장조사를 하면서 질문에 갇히지 않고 내디딜 한 발을 향해 갔다.
그렇게 한 발을 내디디면 다음 한 발이 보였다.
매일매일 부러지며 나 자신 때문에 괴로운 요즘.
그 선배의 조언을 다시 떠올렸다.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고민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스스로 답했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디딜 수 있는 한 발을 내디뎌 나아가라고.
그 선배 역시 이렇게 대답해 주지 않았을까?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내가 좋은 답을 찾은 건지.
결국 멈춰 서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마음먹고 회사에 솔직한 내 상태를 이야기했다.
맡겨진 업무가 너무 과해서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안을 제시했다.
100프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절충안을 찾았고 그 계획대로 다시 해보기로 했다.
또다시 시작이지만, 어떻게든 다시 나아간다.
생각해 보면 50살이나 60살이 된다고 과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어쨌든 상황은 언제나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내가 그려야 할 그림은
완벽한,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느냐일 것이다.
매번 돌아올 수 없는 과거를 고민하느라 너무 자주 멈추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가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못한 나 때문에 화가 나지만 그 마음도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는다.
그 화가 나를 부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성장하려는 힘이 되도록.
딱 그만큼만 자리를 준다.
그리고 나는 강물처럼 간다.
나만의 속도로,
부러지거나 멈추지 않고,
결국엔 바다에 이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