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loolee Feb 10. 2023

A (0)

    A는 종종 지독한 자기 혐오감에 휩싸인다.

   그 느낌은 정말 하찮은 것에서 갑자기 시작하기 때문에, A는 항상 대비할 수 없다.


    어느 날 A는 자신의 발 끝을 바라본다. 자신의 방에서 맨발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가벗은 새끼발가락에 시선이 멈추고는 ‘새끼발톱이 정말 못생겼다.’라는 생각을 한다. 곧 그 생각은 새끼발톱에서 정강이로 옮겨간다. 정강이에 난 털 한 올, 한 올을 보며 이번엔 그 털들의 굵기에 불만을 가진다. 그다음에는 배, 옆구리, 팔에 난 튼 살이 보기 싫어지고, 그다음에는 너무 선명한 것만 같은 목의 주름이, 그다음에는 남들보다 비어 보이는 것 같은 정수리가, 그다음에는 •••. 그렇게 A의 생각은 A의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그 생각의 존재 사실 자체가 A에게 자기 혐오감을 안겨 버린다.

    그날 밤 A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잠에 들지 못한다. 자신의 몸이 너무 못나 이불속에 꼭꼭 숨겨버리려고 하다가, 결국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자신이 가장 못났음을 깨닫는다. 그러곤 자신의 몸을 가여워하며 다시 세상에 나가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지만 A에게는 정말 못난 것을 마음만으로 아름답게 보기란 참 어려운 것이다.

    다음 날 아침, A는 발 끝에서 시작된 자기혐오가 정수리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가득 차오름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A는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자신을 이불에 돌돌 말아 아무도 찾지 않는 침대 한 켠으로 기어 들어갔다. 가족과 아침 인사를 나눌 때 조금 더 구석으로, 학교에서 친구들과 안부를 물을 때 더욱 구석으로,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더욱더 구석으로.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A는, 문득 오늘 모든 일과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가 사실 자신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부터 점점 커져갔던 내가 끔찍하게 싫은 나는, 사실 본인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A는 그의 마음속에서 너무 두꺼운 이불에 둘러싸여, 너무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 버려서,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못난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냥 그를 찾지 않기로 한다. 그냥 그러한 존재 따위는 없다고 여기기로 한다. 그렇게 A는 마음속에서 길을 잃은 그를 무시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다시 가족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다시 친구들과 안부를 묻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다른 어느 날, A는 친구와 대화한다. 친구는 대답한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 대답이 다르게 들린다. 안부를 괜히 물었던 것일까? 친구가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어쩌면 평소와 같은 평범한 하루를 자신이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A는 다시금 잊혔던 못난 그가 커져감을 느낀다. 슬퍼한다. 절규한다. 후회한다. 다시 고통스러워한다.


    A는 종종 지독한 자기 혐오감에 시달린다.


    A는 이런 삶이 지겨웠다. 마치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든 쳇바퀴 위에서 계속해서 달려 끊임없이 고통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A는 한 번쯤은 자신으로 인해 행복해보고 싶었다. 정말 간절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마침내 A는 20여 년간 달렸던 바보 같은 쳇바퀴에서 내려와 보기로 한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A는, 프랑스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부엔 카미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