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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7. 2024

0401-0407 편지 주기(週記)

지난주의 나에게.


새로 나올 책의 표지를 받았습니다. 최종고도 검토했습니다. 최종고를 검토할 때마다 대체 왜 내 글의 오타는 이렇게나 발견이 힘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글을 쓴 사람은 그 글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고 직후에는 고쳐야 할 곳도 오타도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요. 그래서 편집자님과 몇 번이고 크로스 체크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문제는 편집자님도 대여섯 번 읽다 보면 글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둘 다 잡아내지 못한 오타가 인쇄되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합니다.  


표지를 받았다는 건 출간 임박!! 이란 뜻입니다.  고로 한동안은 토할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지내야 한다는 거지요. 책을 내면 들뜨고 기쁘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아직까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불안하고 긴장이 될 뿐입니다. 불안 강박은 이런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책을 내서 기쁜 사람은 어떤 부분이 기쁜 걸까요? 완성작을 무사히 세상으로 내보냈다는 것? 그 기쁨은 작품이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뒤덮을 정도로 큰 것일까요? 때로 나와 완전 다른 성격의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이전에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친구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하루쯤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거나, 뇌를 연결해서 서로의 감각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쓸데없이 싸우는 일이 좀 더 줄어들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뇌를 공유할 수 없고, 영혼도 전이하지 못하게 진화했습니다. 인간은 잘못 진화했어를 백번쯤 외치고 싶지만(... 편한 자세를 할수록 척추수술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일단 잘못 진화하지 않았나요. 다리 좀 꼬고 앉았다고 틀어질 거면 애초에 틀어져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란 말이야....) 그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이 사랑스럽기도 한 거겠지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것이 문학이기도 할 테고요.


틈새에 쪼그려 앉아 보겠습니다.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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