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이었던 나에게.
이전에 아따맘마에 아리 엄마가 까마귀가 길 전봇대에 앉아있는 걸 무서워서 마구 도망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고작 까마귀가 뭐가 무섭다고 저러는 건가 싶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죠. 도쿄에 여행을 갔을 때에 일본의 까마귀는 참 크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뿐이었죠. 어쨌든 까마귀는 까마귀일 뿐, 저걸 무서워할 이유가 있나 싶었습니다. 이번 삿포로 여행에서 까마귀에서 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숙소 앞, 가로수에 앉아 있었죠. 근처 공원을 오고 가며 까마귀를 보긴 했지만 길가까지 나와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기에 재는 왜 여기 있나, 싶어 바라봤습니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요. 까마귀가 내리꽃혔습니다. 그건 뭐랄까, 정말 내리꽃혔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하기 힘든 스피드와 각도였습니다. 날아오른 걸 보지도 못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까마귀의 발톱이 정수리를 내리찍고 있었지요.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제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퍼뜩 까마귀가 인간만큼의 지성이 있었다면 세계정복도 가능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떨어지는 변칙적인 공격은 그 위력이 크지 않아도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걸, 경험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자 까마귀가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까마귀는 다시 가로수 위로 날아 올라가 앉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공격을 받기 전에는 그냥 앉아 있는 것으로 보였던 까마귀가, 공격을 받은 후에는 이 근처로 접근하지 말라고 매섭게 노려보는 듯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을 잘 상상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아리 엄마는, 만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전에 까마귀에서 공격당한 적이 있을지도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공격당하는 걸 보거나. 만약 내가 아따맘마 속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젠 나는 아리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까마귀가 도심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건 6월 산란기 즈음이 가장 심해진다고 하니 주의하도록 합시다. 공격당했을 때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물러나는 쪽이 좋다고 합니다. 우산이나 양산을 펼쳐서 방어를 하라는 글도 읽었는데 까마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그 두 가지를 늘 가지고 다닐 순 없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