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의 나에게.
밤 열 시에 퇴근을 하다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지요. 순수한 경탄과 기쁨에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상을 탄 게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하면 글쎄요. 왜일까요.
어릴 적에 잠시 나를 돌봐 주었던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바닥에 뭉쳐져 있는 것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를 무척이나 강박적으로 했고, 아저씨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머리를 기르지 않았습니다. 어린 내게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자기가 대학생이었을 때 광주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자기는 너무 무서워서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그러다 밖에 나갔을 때 골목 바닥에 피와 함께 엉켜있는 머리카락 뭉텅이를 보고 울었다고. 그때에도 공포만을 느낀 자신이 너무 미웠다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으니깐요.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아저씨를 떠올렸습니다. 아저씨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펑펑 울고 난 뒤에 조금은 자기를 미워했던 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때에 아저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요. 영혼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싶었습니다.
책은, 이야기는 가끔 누군가의 부스럼을 덮는 약이 됩니다. 누군가 내게 약을 발라주었다면, 그것만으로 얼굴 모르는 상대의 소식에 희비를 느끼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책이란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이기도 한 것이겠지요.
서점에 줄을 서서 책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그 사람들이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다양한 책을 만났으면 합니다.
자기만의 끈을 찾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