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브라운(Thom Browne)을 아시나요? 국내에선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즐겨 입는 옷으로 유명해지면서 '양아치가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요.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없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셀럽들이 예쁘게 소화한 모습들이 종종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잘 입으면 예쁘긴 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양론적 반응이 설켜있는 브랜드입니다.
국내에서의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톰 브라운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많은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인데요. 톰 브라운이 이렇게 명품으로써 입지를 굳히기까지는 이 브랜드의 창립자인 톰 브라운(Thom Browne)의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톰 브라운이 패션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무명 배우였다는 사실과 명품 불모지였던 뉴욕에서 이 브랜드가 탄생했다는 두 가지 사실만 봐도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알 수 있죠.
1965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엘렌타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톰 브라운은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서 명문대인 노트르담 대학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생활 이후에 1년 가까이 전공을 살려 컨설턴트로 일했으나 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LA로 향했습니다.
LA에서 그는 다양한 오디션에 참여하고, 광고도 찍으면서 배우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8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활동했으나 성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그 끝에 그는 배우의 길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하게 됐죠.
그가 미국의 많은 도시 중에서 굳이 뉴욕으로 이주를 한 이유는 의상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배우고 싶어서였는데요. LA에서 같이 생활하던 룸메이트가 빈티지 의류를 수선해서 업사이클링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톰 브라운이 그의 일은 계속 돕다 보니 이 일에 흥미가 생겨 본격적으로 의상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매장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게 되는데요. 이때 매장에 방문한 여러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 무엇인지, 패션 브랜드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폴로 랄프로렌의 임원을 통해 랄프로렌을 소개받았고 그 결과, 랄프로렌 산하의 클럽 모나코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게 됐습니다.
클럽 모나코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디자인 실무 경험을 쌓은 그는 2001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톰 브라운'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그는 '고가의 맞춤 정장'을 브랜드의 메인 의류로 선택했는데요.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자신의 브랜드를 어떻게 론칭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어느 날 유난히 눈에 띄었던 풍경은 젊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티셔츠, 후드, 청바지 같은 캐주얼 의류만 입고 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캐주얼이 캐주얼하지 않고 오히려 포멀하고 따분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 생각은 젊은 사람들이 평소에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재미있는 맞춤 정장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젊은 사람들을 위한 맞춤 정장의 모습은 요즘의 톰 브라운 수트와 마찬가지로 엉덩이를 덮지 않는 짧은 재킷, 복숭아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짧은 기장의 바지와 같은 형태였는데요. 자본이 부족하여 이를 홍보하기 위한 모델을 섭외하거나 쇼를 열기가 어려웠던 톰 브라운은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이 정장을 입은 채로 뉴욕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그가 이런 홍보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만든 정장의 외형 자체가 기존의 테일러링 공식을 뒤흔드는 독특한 모습이었기 때문인데요. 이런 독특한 외형 덕분에 그를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흥미를 가지고 그를 쳐다봤고, 개중에는 정장이 우스꽝스럽게 생겼다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도 2년 동안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들까지도 톰 브라운 정장을 입고 다니게 하며 몸소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되는 전략을 실행한 결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톰 브라운은 점점 입소문이 났고 셀럽들도 하나둘 톰 브라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톰 브라운의 전략이 시장에 통한 것이죠.
톰 브라운은 기존의 수트와 다른 독특한 외형만으로도 그 나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브랜드의 영속성을 가져가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수트 외에도 카디건, 니트와 같은 새로운 라인을 선보여야 하는데 이런 모든 아이템들을 관통하기에 이 요소만을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가져가는 것은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톰 브라운이 고안해 낸 것은 네 개의 흰 줄을 넣은 4-Bar와 프랑스 국기가 연상되는 RWB-그로그랭이었는데, 오늘날 이 두 개의 요소는 톰 브라운 디자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톰 브라운이 수트를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어디 제품인지 궁금해할 정도로 눈에 띄었던 것처럼 이 4-Bar와 RWB-그로그랭도 워낙 눈에 띄다 보니 누가 봐도 톰 브라운 제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이미지가 확고하게 시장에 자리 잡혔습니다. 과거엔 톰 브라운 자신이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었다면, 오늘날엔 톰 브라운을 입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된 격이죠.
이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톰 브라운처럼 구매 비용이 높은 고관여 제품의 경우 구매자 한 명을 데려오는데 발생하는 전환 비용이 높은 편인데 구매자가 알아서 홍보를 해주는 격이니 이렇게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톰 브라운의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네트워킹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인 마케팅 방식입니다.
물론 톰 브라운이 이런 점을 100%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근간에 깔린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많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톰 브라운이 이처럼 눈에 잘 띄는 제품 디자인을 만든 것이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효율 때문이든 아니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셀럽들이 톰 브라운을 입으면 그 특유의 눈에 잘 띄는 디자인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이로 인해 톰 브라운의 인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초기에 셀럽들이 하나둘 톰 브라운을 찾기 시작할 무렵 톰 브라운 수트의 짧은 기장이 부담스러워 기장을 좀 늘려달라는 식의 부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서 톰 브라운은 단호히 거절했고 오히려 자신들의 수트를 입는 방식에 대해서 매뉴얼까지 만들어서 공유하는데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톰 브라운은 매장, 컬렉션, 화보 등의 분위기를 '회색빛의 뉴욕 오피스 콘셉트'에 맞춰 일관성 있게 통일했고 이로 인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그리고 톰 브라운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톰 브라운 옷을 입는 것이 원칙인데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톰 브라운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것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브랜드 운영 전략에서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일관성을 지키는 것은 브랜드 운영의 가장 기초이자 근간이 되는 이론인데요. 톰 브라운이라는 브랜드가 이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톰 브라운이 탁월한 경제학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명품 브랜드의 불모지인 뉴욕에서 탄생한 톰 브라운은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문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