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여행의 필수품이 된 여행용 가방 캐리어(수트케이스)가 대중에게 일상화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여행 가방이라는 것은 나무로 제작한 튼튼하고 무거운 짐 보관함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몇십 kg씩 나가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직접 들고 다니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죠.
당시에 이처럼 여행 가방보다 여행 짐 보관함이 주류였던 이유는 여행자의 대부분이 부유층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행 짐을 여행자가 직접 드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의 하인이나 짐꾼이 운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휴대성보다는 내구성이 더 중요했고 이런 탓에 여행 가방보다는 ‘여행 짐 보관함’의 개념이 더 컸습니다.
오늘날 여행용 가방 브랜드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리모와의 전신, Paul Morszeck의 가방 공방 또한 이 시기에는 고급 나무 트렁크를 제작하는 공방이었습니다. 이 공방은 당시에 견고하고 정교한 마감으로 입소문을 타며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공방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공방에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목재 재료가 전소되어 버린 것인데요. 가족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있던 그때 창업자인 Paul의 아들인 Richard Morszeck은 모든 재료가 전소되어 잿더미가 된 공방에서 유일하게 타지 않고 생존한 알루미늄에 주목했고 이를 활용한 여행가방을 개발합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알루미늄 수트케이스로 이어졌고, 이 제품과 함께 “RIMOWA”라는 브랜드 이름도 탄생했습니다(‘RI’chard ‘MO’rszeck + ‘WA’renzeichen(독일어로 ‘상표’를 의미)의 합성어)
리모와는 혁신적인 소재의 사용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외관에서 영감 받은 리브(세로줄무늬) 디자인을 적용하여 현대적인 트래블 기어로서 차별화를 꾀했으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휴대성이 좋은 수트케이스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 것도 리모와의 인기에 불을 댕겼습니다. 즉, 리모와가 겪었던 화재가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브랜드여도 위기를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천재지변 혹은 시장의 변화에 따라 브랜드의 명운이 결정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더러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리모와의 브랜드스토리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공방을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버린 화마 앞에서 기회를 발견한 리모와처럼 위기를 기회로 극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