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현업, 현업, 현업
1. “현업 업무를 하신건 아니었네요”
2. 몇년 전 한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과 대화하던 중, 비씨카드에서 내가 했던 일을 이야기 하자 그가 했던 말이다.
3. 과연 ‘현업’이란 무엇인가? 내가 직접 매체의 광고를 세팅하고 매일 아침 대시보드에서 결과를 확인해야만 현업을 하는 건가?
4.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곧 우리 회사의 현업이다. 각자의 회사가 하고 있는 사업의 종류와 영역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니 각자가 맡고 있는 ‘현업’의 정의가 다를 뿐이다.
5. 며칠 전,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면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한 지인분께서 ‘나는 대기업이라 생각하는 회사에서 일하는데 왜 일이 끊이지 않을까요?’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6. 대기업에 다니든 스타트업에 다니든 바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회사를 다닌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도 그 전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특이하게 여길 정도로 오래 많이 일하기도 했다.
7. '대기업'과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구분해야 한다. 어제 글은 '대기업' 자체를 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을 언급한 이유는 대기업이 가진 구조적 안정성 때문이었다.
8. 통상 ‘대기업’이라 불리는 회사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업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과 사회의 legacy 역할을 하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스타트업에 비해 대기업의 성장/혁신의 속도가 느린 이유는 대기업이 이미 먹고 살만한 수익구조를 잘 갖춰두었기 때문이다.
9. 대기업에서는 내가 밤새워 일하지 않아도 회사의 존폐나 성장에 큰 영향이 없다. 반대로 내가 밤새워 일한다고 해서 회사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짜여진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기업에서 밤새워 일한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다만 굳이 내가 그렇게 일하지 않아도 대기업이 망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10. 하지만 스타트업은 안정성이 부족하다.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이 몇달 뒤에는 가치가 반토막이 되었다거나 자금난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특히 요새는) 심심찮게 들린다.
11. 내가 밤새워 일해서 많은 일을 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곧 회사의 성장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내가 일을 안하면 금세 티가 나기도 한다. 0에서 시작하는 대부분 스타트업의 태생적 특성 상, ‘현상 유지’는 곧 퇴보, 후퇴를 의미할 수 밖에 없다.
12. 대기업은 세상을 유지하게 만들고, 스타트업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세상을 유지하는 것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각각의 회사 안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