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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Nov 13. 2023

내 아이의 사회생활

이서가 어린이집에 다닌다. 3월이 되자마자 다니기 시작했으니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 근처 장인어른 집에 아이를 데려다 준다. 그러면 거기서 한 시간 정도 아침밥도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다가 어린이집에 간다. 


처음에는 걱정되기도 했다. 양육자와 떨어져 어린이집에 처음 가는 아이들은 울며불며 등원을 거부하기도 한다고 들어왔던 터였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첫날부터 씩씩하게 등원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안녕~’하고 인사하며 들어갔다고 한다. 


사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매일 출근하며 아이와 헤어질 때도 아이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아빠에게 '바이바이' 인사를 하면서도 울거나 떼 쓴 적이 없다. 할아버지 집에서 제집으로 돌아오는 매일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쿨하게 작별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우리 아이가 애착형성이 잘 되어 있구나'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간다고 해도 단계적으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는 아이들은 첫 주에는 1~2시간 양육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하원 한다. 그리고 조금 적응이 되면 점심식사까지 하고, 더 적응되면 양육자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다음에는 낮잠에 도전하는 식이다. 애착형성이 잘 되어 있다고 믿고 있던 만큼 아이의 적응도 빠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사를 잘하고 등원하는 모습만 보고 19개월 된 아이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처음에는 아이가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할머니 없이도 혼자 잘 놀고 식사도 하고 낮잠까지 도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문제가 생겼(고 아직 해결 중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거나 어린이집에 수업하러 오는 외부 선생님을 만나면 울음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잠깐 울고 마는 것이 아니라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옆 동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다시 데려오고 있다. 


며칠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집 근처 딸기농장에 방문하는 행사가 있었다. 양육자도 함께 와달라고 했다. 아내보다는 내가 휴가 내기가 조금 더 쉬워 2시간 반반차를 내고 현장에 갔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모여서 어린이집 버스를 함께 타고 현장에 왔고 나는 따로 이동했다. 아이와 함께 딸기도 함께 따고 딸기잼도 만들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2시간쯤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노란색 차에 탄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에게 ‘이서야 아빠랑 저녁에 만나'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잠시 뒤 아이가 울음을 그쳤지만, 창문 너머 인사하고 저에게 재롱을 떠는 아빠에게 이서는 웃어주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이서는 나를 시무룩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서의 얼굴이 생각나 나도 덩달아 속상해졌다. 평소 볼 수 없던 아빠와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헤어진다고 하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자기가 그렇게 울면서 부르는데 차에 함께 타지 않은 아빠가 얼마나 미웠을까? 앞으로는 아예 현장학습에 오지 않는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양육자의 역할은 아이가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 때마다 아이를 안아주기만 한다면 평생 아이는 우리와 떨어져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홀로서기에도 단계와 연습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아이가 울 때마다 집에 데려오기도 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도 어린이집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 역시 아이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들어가면 그때마다 새로운 고비가 나타날 것이다. 그 고비를 스스로 넘고 이겨내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아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가장 괴롭고 고민이 됐던 건 사실 이 지점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닥칠 크고 작은 시련들이 너무 잘 보여서. 하지만 어떤 시련과 도전도 양육자의 든든한 지지와 응원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부부와 조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것은 적응의 과정을 겪고 돌아온 아이에게 최대한의 응원과 지지, 칭찬을 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아침에는 아이에게 응원의 인사를 건네려 한다.


“이서야. 오늘 하루도 씩씩하게 잘 보내야 해.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요. 알았지? 저녁에 아빠가 또 많이 안아줄게. 사랑해 이서야.”


202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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