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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ug 02. 2017

3/4

4월의 목요일 : 준비하다



04.06.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압박감에 쫓겨 나중에 해도 될 생각을 먼저 하고 미리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대다수의 것들은 미리 준비해두면 도움이 되긴 하나, 그렇지 않은 것도 분명히 있다. 이별이 그렇다.




04.13.


여행을 쉽사리 즐기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일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낯선 상황에서 느낄 스트레스가 지금 이곳에 그냥 남아 있는 것보다 싫다. 그러면서도 궁금하긴 하다. 여기 말고, 저긴 어떤지. 그러다 돌아오기 싫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고.




04.20.


오늘 저녁엔 무엇을 할까. 내일은 무엇을 할까.




04.27.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잊어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우리는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흰 구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너의 흰 구름

누군가 개구쟁이 화가가 있어
우리를 붓으로 말끔히 지운 뒤
엉뚱한 곳에 다시 말끔히 넣어 줄 수는 없는 일일까?

떠나야 할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잊어야 할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나를 내가 안다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현재를 과거로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신 모르게 드는 이 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더욱 슬프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차례로 적고 나니, 이별의 인사를 남기게 될 날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 같다. 누군가 개구쟁이 화가가 있어 우리를 붓으로 말끔히 지운 뒤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그림 속으로 다시 말끔히 넣어 줄 수는 없는 일일까. 그곳에 있는 우리의 행복은 다시 재생될 수 있을까.


당신을 두고 떠나야 할 때를 홀로 짐작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을 끝내 잊지 못할 사람으로 남겨두면서, 발걸음을 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안타까운 마음을 당신은 영원히 모를 테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 07.02.


한 달의 4번 중 3번을 지난 시간의 의미에 두고, 1번을 미래의 기대에 두었다. 오늘보다 작은 미래와 오늘보다 큰 과거 사이의 오늘에 서있다.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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