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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호 Apr 22. 2017

중국의 부상과 패권을 이해하는 한 시각

“21세기 벽두에 일어난 중국 부상의 국제정치사적 의미는 기존의 국가-주권 시스템을 뛰어넘는 대안적 세계질서의 운영과 작동원리를 중국이 제시하고 실행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중국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계질서 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세계질서의 미래를 가늠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중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계질서 재편 담론은 대안적 세계질서 구축과 재편을 지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기존의 국가-주권 시스템에서 중국이 어떻게 패권국이 될 수 있고 획득된 패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는가?”(http://www.eai.or.kr/type_k/panelView.asp?bytag=p&catcode=+&code=kor_report&idx=15196&page=1)


   인용한 글에서 필자가 결론을 맺은 것처럼 중국은 대안적 세계질서를 실행할 수 있을까. 아님 그저그런(?) 패권국가가 될 것인가. 2008년 이후 보이는 중국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명한 중국학 학자이자 화교사학자인 왕궁우는 2015년 싱가포르 매체의 칼럼에서 이에 대해 전망한 바 있다. 근본 질문은 최근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여 싱가포르와 같은 중화권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원로학자의 중화제국에 대한 인식이다. 최근 국제사회나 학계에서 많이 하는 질문이 중국이 과연 패권국가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왕궁우는 만일 그것이 중국의 번영과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면 대답은 ‘그렇다’ 이지만 그 질문자체가 잘못되었고 한다. 
   해군력을 앞세워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영국 및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의 길을 걸을 이유가 중국에게는 없다. 중국의 역사를 훑어봐도 그러한 서양의 제국주의와 같은 패권국가적인 성격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정화의 대원정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보더라도 그 원정의 목적이 영토를 확보한다거나 지배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엄을 드러내고 잠재적인 외부의 적을 확인하는 작업이었을 뿐이라는 것, 오히려 경제적 부와 선진적인 기술 등으로 수천 년간 존경을 받아왔다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즉, 중화제국의 전통적인 특징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화제국의 전통에 비추어 보았을 때,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차지하여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인식은 옳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중국은 근대 문명에 필요한 조건들, 즉 부, 창의성 등을 통해 존경받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글 전체적으로는 아세안 국가와 중국의 관계 및 싱가포르-중국 관계를 설명하면서 싱가포르를 비롯한 3천만이 넘는 동남아 화교 사회가 처하게 될 현실을 짚는다. 중국의 팽창과 함께 화교사회가 속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이익과 중국 본토로부터 닥쳐올 문화적(같은 종족이라고 하는), 정치적 압력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의 연구가 대부분 그러하기는 하지만, 그의 중화제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고전적이고 전통적이라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진, 한대 이래 수천년간 존재해 온 중화제국이라는 문명적 현상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다른 관점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어쩔수 없다.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과 상업적 외교적 관계를 맺고자 했을 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조청관계였다. 하여 그들은 가끔 조청관계의 본질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곤 했는데, 그에 대해 총리아문의 대답은 “중국은 조선에 대해 종주권(suzerainty)을 가지고 있고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지만, 정치, 종교 각 종 법령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지닌 국가다. 청은 이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였다. 사실 이는 잘 알려진 조공책봉체제의 모범답안이기도 하다. 
   다만 Kirk Wayne Larsen은 그의 박사학위논문인 “From Suzerainty to Commerce: Sino-Korean Economic and Business relations during the open port period 1876-1910”(Harvard University 2000)에서 그 전통적 관계는 1880년대 조선의 개항장 시기에 이르면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흔히 조청관계 연구에서 보이는 주요 경향은 청일전쟁을 끝으로 주도권이 완전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고 청은 조선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됨으로서 조청관계는 끝이 나게 된다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조청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비록 총리아문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건 맞지만, 대신 상업적(Commerce) 영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 사례로 조선화상과 해관의 운영을 들고 있다. 
   개항장 시스템의 핵심 중 하나인 조선해관의 설립에서 청 조정은 자금을 지원함과 동시에 영국과 함께 공동으로 운영함으로서 조선을 서구 제국주의 특유의 개항장 체제로 끌어들였고, 아울러 조선의 대외무역을 활성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조청수륙무역장정으로 수많은 화상들이 조선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산동출신 중심의 북방, 절강 강소 출신 중심의 남방, 광동 출신 중심의 광동방 등 지역적으로 구별되는 이들 화상들을 청 조정이 설립한 ‘중화회관’이라는 기관을 통해 관리하여 이용하거나 혹은 지원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청 조정의 조선에 대한 차관을 중개한 광동화상 동순태를 들 수 있겠다. 또한 많은 화상 및 화교들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 및 기업가들이 조선에서 활발히 상행위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하면서 중간에서 이득을 취했다고도 하고. 이러한 상업 분야에서의 활동 이면에는 대부분 청 조정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주로 마건충, 진수당, 원세개, 당소의, 당정추 등 청의 관리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상행위에 대한 지원을 모색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조공책봉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종주권(Suzerainty)에서 해관과 화상으로 대표되는 상업적(Commerce) 영향력의 강화로 이어진 이 조청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하는 점이 Larsen 연구의 핵심이다. 결국 조선의 개항장 시스템에서 보이는 청의 조선에 대한 태도 변화는 기존의 전통적 종주권의 확립이라는 측면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오히려 서구 제국주의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해관을 통해 개항시킴과 동시에 조약을 통해 상인들을 보내어 해당 지역의 경제권을 장악하는 패턴의 서구 제국주의를 학습한 청 제국이 그것을 체화하여 청 제국 스타일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조선에 부과하려 했다는 것인데, 이를 Larsen은 ‘비공식적 제국주의(Informal Imperialism)’라고 명명한다. 
   즉, 근대적인 제국주의 시스템을 경험한 청이 조선에 대해서 기존의 조공 책봉이 아닌 서구의 제국주의 모델을 적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비공식적 제국주의’ 개념은 중국 문명의 적용 및 변용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그러한 측면에서 근래에 보이는 중국의 팽창이 과연 전근대적인 중화제국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있다. AIIB 나 브릭스 통화기금의 설립, 일대일로를 통한 유라시아 대륙 진출,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경쟁적 자원 개발붐 등을 통해 보았을 때 오히려 미국의 패권통치 방식을 굉장히 많이 참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국 세계패권을 유지하는 두 축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력과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력이라고 알고 있는데, 중국의 최근 행보 가운데 국제적인 금융기구 설립과 관련한 주요 골자를 보면 기구 내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만큼이나 위안화의 영향력 역시 늘리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금융결제 및 거래를 위안화로 하려하는 것도 그렇고,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흔쾌히 중국 주도의 금융기구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위안화를 최대한 유치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여러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개발 협약을 맺는 과정을 통해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 역시 보인다. 
   최소한 금융적으로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가 미국의 세계 패권형성에 미친 영향을 중국 정부가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자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치 청 말 이후 서구에서 도입된 근대적 제국주의를 경험한 중국이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여러모로 변용 및 적용하려 했던 것처럼. 현재 세계 각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자원 경쟁이 중동에서 벌인 미국의 석유전쟁과 오버랩되기도 하고. 그런 측면에서 최근 중국의 팽창을 전근대적인 조공 책봉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보기 보다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 변화된 체제를 흡수하고 적용 및 변용하는 중화제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부적으로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권위주의적 일당체제를 갖추고 외부적으로는 미국식 패권주의를 변용하여 적용하려 하는 것이 패권국가로서 ‘제국’ 중국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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