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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Feb 13. 2022

설명 불가능함에 대한 미주.

『영원히 사울 레이터』

 

 사진은 시간을 잡아두는 행위의 결과다. 사울 레이터가 남겨놓은 시도는 평생 비슷한 자리에 머물면서 맞닥뜨린 대상들을 미분한 것이다. 그렇게 나뉜 수많은 순간은 삶의 일부요, 파편이다. 경구와도 같은 그의 짧은 문장들이 책을 구성하는 방식 또한 그것들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가 흔적에 영원성을 부여했다기보다는 흔적을 다시 흔적으로 만들어 봉합해 두었다고 느낀다. 이유는 사울 레이터가 인화하지 않은 수많은 컬러 슬라이드에 있는데, 레이터 스스로가 얘기한 것처럼 그것은 “인화한 적 없고 앞으로도 인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공개된 부분이 현실 세계의 전부인 척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그보다 오래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어색한 특권으로(사울 레이터는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것들을 들춰보게 되었는데, 그게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이게 다 한 사람을 조금이나마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벌이는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일. 끝내 정확해질 수 없지만 계속 그 시도를 하는 일. 사실 그로써 우리가 획득하는 것은 사울 레이터 생전의 그가 지닌 자기 서사가 아니라 새롭게 편집된 서사이다. 이는 완전히 정확해질 수 없다는 얘기이면서 동시에 정확하지 않음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곳을 끊임없이 경유하며 지나친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과 인생에 함께했던 솜스와 데버라, 그리고 레이터 자신으로 묶인 이야기들은 단순하지만 일견 명확한 사울 레이터의 ‘어떤 순간의 집합’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한 존재의 설명 불가능함에 대한 미주일 뿐이다.   


ⓒ Saul Leiter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심오한 설명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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