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없이 완전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줄 알았지...
솔직히 갈등에 대해서 배우겠다고 결심했을 땐 ‘갈등 없이 완전한 평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갈등에 대해서 알게 되면, 어떤 갈등도 잘 다룰 수 있게 될 것이고, 모든 갈등을 잘 해치운다음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은 야무진 꿈을 잠시 꾸었었다. 그런 생각이 환상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잠시 꿔봤다. 아무 갈등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평화로운 세상을… 그러한 나의 인생을…
막상 ‘갈등’을 주제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실망감으로 휘청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던 갈등까지 몰려와 세상이 온통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였다. 책을 읽으면 차이와 불일치와 난감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여러 사례를 읽을 수밖에 없었고, 주변을 바라볼 때도 ‘갈등’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니 온갖 일이 다 갈등 투성이처럼 보였다.
세상이 모두 문제투성이인 듯 보였다. 갈등 공부의 부작용 혹은 명현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갈등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직장인 여성과 대학생의 가정 내 갈등에 대한 논문을 쓰는 동안에는 몸까지 아파왔다. 생각해 보니,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픈 사람을 가장 많이 보고, 죽음과도 가장 가까이 서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정신을 살짝 차리고 보니, 이 세상의 갈등은 단순히 몇 가지의 팁이나 기술을 가지고 깨작깨작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굳이 서로가 불행해지는 선택을 하지 않고 몇 가지 좋은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에 작은 갈등, 큰 갈등이 따로 없는 듯하다. 아주 작고 개인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갈등이 심해지면 한 사람의 정신 내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 한 사람을 파멸로 이끌어갈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도 끌고 들어 가 불행에 빠뜨린다. 그 지옥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부서지는 생각과 마음을 잘 관찰해야 한다.
갈등을 배운다는 건, 그 순간들을 잘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렌즈를 얻는 것이다. 갈등 상황에서 눈 감지 않고 사태를 요리조리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갈등 공부다. 부정적인 갈등 경험에 오랫동안 처해있었던 사람이라면 마음 근력이 아주 약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약해진 상태에서 갈등에 대면해 나가는 것이 쉽진 않다. 그러나 아무런 대비도 없이 융단폭격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건설적인 갈등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