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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Jan 29. 2024

갈등에 대해 배우면서 놀랐던 순간들

갈등이라는 과목은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갈등에 대한 지식이 많다 해도 실제 갈등 상황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갈등 관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분야라 몸으로 직접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반부터 실습을 하기 위해 워크숍에 다니곤 했었다. 처음 워크숍에 참여해서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갈등 이미지를 그려본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갈등 워크숍 첫 시간에 했었던 활동이었다. 갈등에 대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해 보는 시간이었다. 갈등에 대한 이미지?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발표를 해야 했기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갈등은 스트레스와 같은 말이었다. 딱 얼어붙어서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어떻게 그렸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다른 분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갈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군가는 폭탄이나 빨간 불꽃을 그렸다. 화가 나고 펑 터질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엉켜 버린 실타래를 그렸다. 복잡하게 꼬여서 풀기 힘든 것이 갈등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수갑이나 잠겨있는 자물쇠를 그리기도 했는데, 꼭 붙들려서 도망도 못 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찢기거나 깨어진 모습을 그렸는데, 관계가 찍어지거나 파탄이 나는 상태를 표현했다고 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갈등에 대한 이미지가 점차 생생해지고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갈등을 부정적이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느꼈다. 그러니 ‘해결’해서 ‘없애’ 거나 ‘잘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갈등 워크숍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고 말이다. 그런데 이 워크숍을 이끌었던 리더는 갈등의 이미지를 다르게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갈등은 꽃이 될 수도 있고, 춤이 될 수도, 게임이 될 수도 있었다. 열매를 맺기 위해 화려하고 다양하게 피어나는 존재, 왔다 갔다 하면서 복잡한 스텝을 밟는 일, 다음 판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하는 것 등 여러 방식으로 이미지를 대입해 보는 것이 가능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며 감탄을 했다. 갈등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그 이후에 딸려 나오는 반응이 달라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갈등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지 않은 채 반응한다. 물론 상대방이 가진 갈등 이미지에 대해 체크해 보지도 않는다. 각자 가진 갈등 이미지의 차이 자체로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그 보다 먼저 ‘갈등’이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한 자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런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갈등이 생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충될 것 같은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 이후에는 게임으로 실습을 했다. 재미있게 갈등을 조장하는 규칙을 가진 게임이었다. 가장 간단한 게임은 참여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고 각자 다른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의자를 모두 앞쪽으로 옮기시오’, 두 번째 그룹에게는 ‘의자를 모두 가운데로 옮기시오’, 세 번째 그룹에게는 ‘의자를 모두 뒤쪽으로 옮기시오’라고 적힌 쪽지를 나누어 주고 그대로 시행하라고 했다. 또한 서로가 받은 쪽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문받았다.


순식간에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의자를 뒤쪽으로 옮겼고, 그걸 또 다른 사람은 앞으로 옮겼고, 또 다른 사람은 중간으로 모았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쪽에 의자를 더욱 많이 가져다 놓으려고 필사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기고 지는 싸움도 아니고 자기 쪽에 의자가 더 많다고 얻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러다가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워크숍 진행자는 이제 서로 말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사태를 파악하자니 서로 받은 쪽지의 내용이 서로 달랐다. 진행자는 어리둥절하고 있는 참여자들에게 ‘이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다’고 힌트를 주었다. 사람들은 금세 이해를 하고, 한 번은 앞쪽으로, 그다음은 중간, 마지막으로 뒤쪽으로 의자를 모두 이동시켰다. 그 일을 모두 해내고 나선 기분 좋게 환호를 했다.


해결하기 쉬운 일이었는데 단체가 우왕좌왕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충격을 받았고, 그 뒤에는 무안해졌다. 쪽지를 받고서 앞뒤 안 재고 그 내용에만 빠져서 바삐 움직였던 나의 모습이 너무 단세포인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나는 참 나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런데 이 게임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뒤에는 조금 더 복잡한 형태의 게임이 제시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서 경쟁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내 것을 더 얻어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어떻게 하면 나한테 더 유리할까?’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회유했다. 경쟁적으로 굴면 불리해지게 설계된 게임이라, 결국 얻는 건 없었고 낭패감만 올라왔다.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이렇게 이기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나?’ 싶었다. 그동안 ‘경쟁 구도에 갇혀서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나아질까?’하는 생각에 빠져 한참을 살아왔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태도가 갈등 상황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반응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갈등’이 발생되면서 긴장된 상황이 연출되면 사람들은 흔히 공격하거나 회피하려는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갈등을 위협이나 스트레스받는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는 상태에서는 동물적인 본능이 작용하여 이런 반응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반면 갈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참여자 간에 대화를 하게 되면 본능과는 다른 여러 생산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갈등 공부의 첫걸음이었다. 늘 갈등을 겪고 있으면서도, 갈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평소에 느긋하고 둥글둥글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경쟁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그만큼 더 갈등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몰랐다. 씁쓸함과 동시에 기대감이 솟아났다. 앞으로 배울 게 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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