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삶을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
일상은 갈등의 연속이다. 살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매일 얼굴을 부딪히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과 의견이 딱 맞아서 짝짜꿍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내 마음조차도 일치가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할까 서성이곤 하니, 말 다 했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의 바다라고 했던가. 그 말도 맞다만, 그 불일치가 인생을 독특하고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 또한 비밀 아닌 비밀이라고 하겠다.
나는 지극한 평화주의자(?)이지만, 갈등의 순간을 기대하기도 한다. 갈등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안전지대에 틀여 박혀서,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은 꽤나 지루할 것이다. 무엇보다 삶의 방향성을 잃게 만들 수 있다.
돌아보면, 갈등을 겪는 순간에 에너지 수준이 높아지고 그 일에 극도로 집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크게 부각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자세하게 바라보면 해당 사건에 대해서도, 여기에 포함된 사람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것이 많았다. 특히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최근에 내가 심각하게 겪었던 갈등은 육아와 일에 관련된 것이었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일과 가정의 균형이 가능하다고 누군가는 말을 했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는데, 학부에서 아침 9시 강의를 배정해 주었다. 아이 어린이집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다가, 강의를 포기했었다(물론 이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후에도 일이 하고 싶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다. 결국에는 일보다는 육아에 집중을 하는 선택을 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 여자들이 많다.
나의 경우, 육아와 일 사이의 갈등을 겪으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더 가중치를 두기로 했다. 아이를 떼어두고 일을 하다가도,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집에 있다고 특별한 걸 해주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일과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하겠다고 아이를 울고 불게 만드는 것도 마음에 많이 걸렸다. 첫째 아이때는 그렇게 하면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유지했었는데, 점점 갈등이 심해지면서 결국 한쪽 길을 선택해 버린 것이었다.
현재로서는 육아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과정을 겪으며 한편으론 일 또한 내 삶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갈등을 겪기 전에는 ‘나에게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 알기 힘들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이전부터 하던 일이니까 자동적으로 굴러가고 굴러갔던 측면이 컸다.
전처럼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자, 내가 하던 일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던 일을 하나 하나 손에서 내려놓으면서, 정신없이 쳐내던 여러 일 중 나에게 더욱 맞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에게 맞지도 않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일도 많았다. 지금은 그러한 일에서 벗어나 있다.
만약 이 갈등 상황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예전에 살던 삶의 틀 속에서 비슷한 생활을 영위하며 살았을 것이다. 답답하게 여겼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나에게 일이 중요하지 않았더라면,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삶 하나만을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갈등이 없어서 마음은 편했겠지만, 아이 키우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생각할 수 기회는 갖지 못했을 것이다.
갈등은 삶의 모호한 측면을 뚜렷하게 드러내곤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혼란스럽게 등장하지만, 갈등에 집중하고 다가설수록 사건의 면모가 선명해진다. 갈등을 겪을 때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이 중립적이고 무의미했던 일에 다채로운 색채를 입혀, 기억 속에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들이 결국에는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재료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