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로서 카페

by 커피시간

제가 일하는 카페는 서울의 망원합정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멋진 사람들이 많아서 인기가 많은 동네고, 그래서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좀 구립니다. 여하튼


그 동네가 그렇듯이 예술을 좋아하는/하려는/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경우 나이 드신 분도 간간이 오시지만 대부분 손님들은 젊은 분들입니다. 주말에는 커플들이나 친구들끼리 많이 오고 평일에는 공부하거나 작업하려는 사람들이 옵니다. 대부분 혼자고, 옷을 다들 아주 잘 입습니다. 소설책이나 시집을 가져와 읽으시는 분이 대다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제가 사장은 아니지만 제 카페가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인문학 쪽의 책이 한가득 쌓여있고, 음악도 멜론100이 아니라 재즈나 클래식 시디를 틉니다. 나무색이 지배적인 내부는 아늑하고, 요새 커피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유행이 지난, 사장님 말에 따르면, 미드센츄리와 킷사텐의 융합같은 공간입니다. 손님들이 얼추 자리에 차고 주문이 다 나가면 저도 책을 읽습니다. 서로 읽는 책에 대해, 음악에 대해 바에 앉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ㅅ습니


그리고 저는 예술에 대해, 특히 문학에 대해 조금 복잡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문학 없이 못 사는 사람이지만, 뭐랄까, 문학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이 담백해서 좋아합니다. 있어보이기 위해 문학 읽는 사람들은 차치하고, 적어도 제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어떤 쾌감 때문인데, 그 쾌감은 자기 내부의 어떤 결핍을 문학이 잘 이해해주고 달래주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멋지고 아름다운 책을 읽지만 점점 고통스럽고 슬픈 책을 읽게 됩니다. 사람들은 공감가는 걸 읽고 싶어하는데 인생이 갈수록 힘들어지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힘든 책들은 가끔은 나와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냥 수사적인 장난이고,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를 동력으로 하는 정신적 자위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는 그 책과 관계맺으며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자기가 눈물을 흘리든 어쩌든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변하지 않음에서 오는 슬픔에서도 쾌락과 안도감을 느껴버리게 되는 현상인데, 물론 세상이 잘못한 게 맞지만, 저는 독주같은 문학의 탓도 크다고 봅니다.


제 카페는 정신적 공간으로서 문학적 도피처가 현실계에서 형상화된 느낌입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에게 도피처가 필요합니다.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향기로운 커피와 감미로운 음악이 필요합니다. 눈물을 가릴 수 있도록 조도는 낮아야하고, 기분에 따라 읽을 수 있는 책들이 구비되어 있으면 더 좋습니다. 사실 삶은 정말 맨정신으로 살아나가기 힘드니까요. 뭘 하든 고통스럽습니다. 젊을 때는 괜찮지만 나이가 들수록 도망간다는 선택지가 사라집니다. 도망에 대한 리스크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그래서 도피처로 와서 커피든 술이든 마시고 자신을 안전하게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피처는 다시 현실로 복귀하기 위한 곳이어야 합니다. 영원히 도피처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잖아요. 물론 안 도망쳐도 낙원은 없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희망을 가지고 싸워야합니다. 도피처에만 머물러있으면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은 패배를 합리화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작가들이야 글을 쓰며 싸운다지만, 독자들은 문학에만 너무 빠지면 안됩니다. 어떤 것이든 과하면 안 좋은데, 문학은 무조건 좋고 아름답고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이라는 오해가 만연합니다. 저는 정확히 그 반대라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다 제가 저에게 하는 말인데요.. 멋진 책을 읽고 우와 정말 쩐다.. 하고 감탄하다가, 이 감탄이 정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실 모든 게 따지고 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만, 문학의 진짜 문제는 모든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인식을 아주 열렬히, 제대로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일상을 살아가는 책 읽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인식을 지닐 기회가 잘 없습니다. 일하고 밥먹고 즐기고 자기 바쁘니까요. 어쩌다 퇴근길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 불어오는 바람에 뭔가 마음이 서늘해지며 갑자기 다 때려치고 사라지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냥 넘깁니다. 저녁 먹어야죠. 사실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넘겨야하는데, 그걸 굳이 들춰내 탐구하고 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라는 만화책에 보면 처음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병든 사자만이 풀을 뜯어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그러나 책 읽으면 정말 재밌죠. 문학을 포함해서 예술을 받아들이면 내 삶에 층위가 하나 더 생기고, 시각이 조금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지요. 그 인식을 어디 숨어 혼자 씹어먹지 말고, 지친 몸을 다시 일으킬 동력으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일을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겸허하게 당당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에도 거울을 마주볼 수 있도록요. 도피처가 아니라 휴식처로서 카페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커피도 더 맛있어질 것입니다. 어딘가에 매몰된다면, 스스로를 잃어버린다면, 커피를 마셔도 즐겁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발 그 빌어먹을 추상에 삶을 내어주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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