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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불 Oct 01. 2016

Goodbye.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을 위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죽어 없어진다. 우리는 그 죽음 이후에 뒤늦게 후회를 하게 된다. 더 많이 사랑할 것을, 더 잘 해 줄 것을, 더 아껴줄 것을. 


누구든 후회 없이 살겠냐만, 내 인생에 남은 뼈아픈 오점들 중 하나는 한 음악가의 죽음 이후에 더 사무치게 다가오는 일이 되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의 음악을 사랑해 왔지만,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음에도 그의 공연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에서 열린 찰리 헤이든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찰리 헤이든은 2014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난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찰리 헤이든은 내가 막 재즈를 듣기 시작할 즈음에 알게 된 음악가이다. 팻 메시니와의 이중주를 담은 [미주리의 하늘 너머 Beyond the missouri sky], 그리고 곤잘로 루발카바, 조 로바노 등의 음악가들과 함께 만든 멋진 라틴 재즈 음반인 [야상곡 Nocturne]을 들으며 찰리 헤이든의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찰리 헤이든은 나에게 또한 재즈 교과서였다. 오넷 콜맨의 사이드맨이었던 시절, 키스 자렛의 사이드맨이었던 시절, 칼라 블레이와의 프로젝트였던 리버레이션 뮤직 오케스트라, 쿼텟 웨스트, 곤잘로 루발카바와의 아름다운 라틴 재즈 앙상블까지, 찰리의 발자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지금 들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재즈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아주 급진적인 음악과 아주  통속적인 음악을 함께 품은 음악가였다. 그리고 어떤 소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진중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음악가였다. 아주 적은 음표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찰리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재즈 듣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그 베이스 소리는, 아주 무거웠지만 우울하거나 둔하지 않았다. 그 자신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열정의 불꽃을 단단하게 감추고, 밝게 빛나는 파트너를 더욱더 밝고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 주면서도, 그 자신의 빛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키스 자렛이나 이그베르투 지스몽치와 함께 할 때의 찰리 헤이든은, 소리를 내지 않을 때도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찰리의 연주는 마치 진중하고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한결같이, 찰리 헤이든의 연주를 사랑했다. 하지만 찰리의 연주를 직접 들을 인연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찰리가 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씩 웃는 미소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커다란 베이스를 끌어안고는 춤을 추듯 연주하고 있을 것만 같다. 

 

왜 이제 와서 찰리에 대한 작별 인사를 하느냐면, 키스 자렛과 찰리 헤이든이 마지막으로 함께 한 음반인 [재스민 Jasmine]과 [마지막 춤 Last dance]에는 모두 Goodbye라는 곡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치 떠날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찰리는 그렇게 조금 서글프면서도 다정한 작별 인사를 남겼다. 나도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찰리를 떠올린다. 안녕, 찰리. 먼 별에서도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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