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빌 에반스를 좋아해 (Everybody digs bill evans)라는 앨범이 있다. 빌 에반스의 초창기 리더작 중 하나인데, 그의 전설적인 트리오가 남긴 넉 장의 녹음보다는 덜 유명하겠지만 그래도 산뜻하고 좋은 연주가 담겨 있는 앨범이다. 그리고 난 이 앨범의 커버에 빼곡한 '재즈 레전드'의 추천사들 (마일스 데이비스, 캐논볼 애덜리 등등)과 앨범의 제목 자체를 무척 좋아한다. 빌 에반스는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재즈 팬들에게도 거대한 산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렇게 귀여운 제목을 붙일 수 있었던, '아직 거인이 아니었던' 시절에 있었다는 생각만 해도 어쩐지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재즈는 몰라도 빌 에반스는 아는 사람, 혹은 그의 이름은 몰라도 생김새는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한 번쯤은 waltz for debby 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들어 봤을 것이다. 에반스의 음악적 기반에는 클래식이 있기에 재즈에 익숙지 않은 리스너들도 쉽게 접할 수 있기도 하고, 아름답고 듣기 좋은 연주를 많이 남겼기에 재즈 입문자부터 오래된 재즈 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티스트이다. 그것뿐인가.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안경, 피아노 앞에 담배를 물고 앉아 있는 모습, 건반 위에 고개를 숙이고 연주에 집중한 백인 피아니스트, 그가 남긴 모습은 재즈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반스의 '리버사이드 4부작'이라 불리는 연작 중 Portrait on jazz 의 제목을 본인의 재즈 에세이의 표제로 붙이기도 했다.
처음 들을 때 쉽게 들리면서도 몇 번을 거듭해 들어도 매번 새롭게 반하는 순간이 있는 음악을 나는 좋은 음악이라 여긴다. 그런 면에서 빌 에반스의 앨범, 특히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발매된 - 소위 '리버사이드 4부작'이라고 불리는 앨범은 재즈 입문에도 좋고 10년을 들어도 좋기에 아주 훌륭한 앨범이다. 재즈의 미덕이 반짝하고 빛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소리의 형태로 붙잡아 둔 것이라면, 녹음된 지 50년이 훌쩍 넘어도 빛나는 이 음악들은 그야말로 재즈의 정수이며 황금기의 상징인 것이다.
사실 이 4부작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순간'의 기록이기에 진정 아름답고 치열하다. 빌 에반스의 전설적인 트리오, 빌 에반스 - 스캇 라파로 - 폴 모션의 앙상블이 세상에 존재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들이 이 아름다운 연주들을 녹음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스캇 라파로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빌 에반스는 충격에 빠져 한참 동안 연주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연인지 아닌지, 빌 에반스의 연주는 스캇 라파로의 죽음 이후 다시는 이렇게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품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의 연주는 세월을 더하며 원숙해지고 한결같이 아름다웠지만 언제나 그늘이 서려 있었고 말년으로 갈수록 그 그늘은 커졌던 것 같다. 빌 에반스의 마지막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나의 이야기가 어떤 뜻인지 이해하리라 믿는다.
나는 사실 빌 에반스의 말년 레코딩을 즐겨 듣지는 못하는 편이다. 빌 에반스의 인생이 서서히 망가지고 슬픔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듯이 음악에도 그 슬픔이 크게 전해져 오래 듣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크고 깊은 슬픔과 아픔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춥고 아프고, 때로 슬프지만 그래도 반짝거리는 것, 그야말로 어느 시인이 말했던 '찬란한 슬픔'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은, 그 찬란한 슬픔마저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빌 에반스를 들을 때마다 '처연하다'라는 말을 종종 떠올린다.
그리고 빌 에반스의 봄날을 다시 생각해 본다. 리버사이드 4부작 중 Explorations라는 앨범에는 Nardis라는 곡이 있다. 작곡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재즈 역사상 빌 에반스보다 이 곡을 더 아름답게 연주한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에반스는 평생 동안 이 곡을 연주했고 말년의 라이브에서는 그즈음 에반스의 연주가 거의 그러하듯 템포가 매우 빠르고 흐트러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초창기 녹음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슬픔을 담은 듯한 단조의 멜로디는, 차분하고 우아한 박자 위에 놓여 서글프지만 기품을 잃지 않은 어떤 사람, 혹은 그저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려낸다. 리듬 섹션은 단단하고 에반스의 피아노는 흔들림이 없다. 흐트러짐 없는 앙상블과 빼어난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젊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한, 그들 인생에 단 한 번뿐이었던 아주 짧은 봄날의 기록이기도 하다.
Waltz for debby를 들으며 생각한다. 조카를 위해서 이렇게 예쁜 곡을 만들었던 피아니스트는 참 좋은 사람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는 커다란 슬픔을 털고 일어낼 만큼 강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의 남은 생은 인생에서 가장 반짝였던 아주 짧은 시간에 대한 기억으로, 혹은 그 시간을 생각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차지 않았을까?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기록을 듣고 또 들으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을 봄날을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아무리 에반스의 미공개 녹음이 계속 발굴된다 한들 이 전설적인 트리오의 앨범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음악의 형태로 빚어낸 것이 재즈라면, 다시는 이뤄지지 못할 앙상블이 만든 빛나는 녹음이야말로 재즈 그 자체의 현현이라 할 수도 있기에, 그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의 기록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명반이 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모두는 빌 에반스를 좋아한다. 그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도, 찬란한 슬픔 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