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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기린아 Sep 14. 2023

녹색방랑, 이미지 여행기 2023

<Departure, 번지는 방랑>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보이는 시야를 보고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말도 안 되는 이미지가 탄생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총 필름 4통을 썼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 사진이 구도를 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른 손 끝에서 탄생했다는 게 너무 기특하고 놀라웠다.

공항에 가면 무디 Moody 해진다. 이륙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비행 뒤에 펼쳐질 낯선 세계들에 대한 기대감이나 착륙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입국 심사 속 인파들 속에서 멍하니 서있을 상태에서 미묘한 안도감 같은 감정들이 번갈아 오간다.


매일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거쳐가는 물길과 물길이 이동하다가 한 곳으로 모이는 공항의 모습이 내 마음 한구석의 모습 같아서 아주 뭉근한 편안함을 느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빠르지 못한 둔한 눈 깜빡임으로 포착하여 그 실루엣이 무너져 내리고 배경으로 스며 번지는 모습이, 인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눈만 꿈뻑이고 있는 내 시야를 꼭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디론가 항상 향하고 있고, 향해야 하는 우리의 강박적인 방랑이 우리를 스스로에 삶의 윤곽을 지워내면서 묘한 쓸쓸함을 자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다. 그 쓸쓸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방랑벽의 모습이려나.

목적지를 경유하는 중간 지역의 공항에서 창 밖으로 힐끔힐끔 보이는 이국의 우거진 열대 야자수가 이미 들뜬 마음을 하늘로 두둥실- 날려보낸다. 조급하다. 의자에 감히 앉아있을 수 없는 조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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