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ure, 번지는 방랑>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보이는 시야를 보고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말도 안 되는 이미지가 탄생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총 필름 4통을 썼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 사진이 구도를 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른 손 끝에서 탄생했다는 게 너무 기특하고 놀라웠다.
공항에 가면 무디 Moody 해진다. 이륙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비행 뒤에 펼쳐질 낯선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착륙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입국 심사 속 인파들 속에서 멍하니 서있을 때의 미묘한 안도감 같은 감정들이 번갈아 오간다.
매일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거치는, 물길과 물길이 이동하다가 한 곳에 잠시 모여있는 공항의 모습이 내 마음 한구석의 모습 같아서 뭉근한 편안함을 느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빠르지 못한 둔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포착하니 물체의 실루엣이 무너져 내리고 배경으로 스며 번지는 모습이, 인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눈만 끔뻑이고 있는 내 시선과 꼭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디론가 항상 향하고 있고, 향해야 하는 우리의 강박적인 방랑 역시 삶의 윤곽을 지워내면서 만드는 풍경이 묘한 쓸쓸함을 자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쓸쓸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방랑벽의 모습이려나.
목적지를 경유하는 중간 지역의 공항에서 창밖으로 힐끔힐끔 보이는 이국의 우거진 열대 야자수가 이미 들뜬 마음을 하늘로 두둥실- 날려보낸다. 조급하다. 의자에 감히 앉아있을 수 없는 조급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