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th, 장면의 깊이>
사진으로 장면을 거두는 일은 신비롭다.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보기를 요구하면서, 요소를 빼고 넣고, 구도를 정하고, 깊이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는 평면성이 부각되서 마치 진공상태 같은 극도의 미니멀리즘 사진보다는 현실의 요소를 프레임 안에 욱여넣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빛이나 각 물체가 가진 시각적인 특성이 충돌하면서 우연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사진이 좋다.
형태의 선보다 항상 면의 색에 민감하여 색이 건네는 언어들을 사랑하기에 색이 없는 흑백 사진의 매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색이 없어지니 그제야 선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조용한 것들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인내를 가지고 바라봐줘야 말을 하기 시작하나 보다 깨닫는다.
그다음 과정은 거세된 색들의 욕망이 담긴 속삭임을 듣는 것이다. 색을 보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색을 없애는 것은 색을 보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갈망을, 목마름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그래서 그 자체 만으로 흑백의 세계는 기이하고 신비롭다.
본 적 없는 갈망의 세계.
그 세계에 깊이감을 더하면 이야기가 생긴다. 사실은 사진을 찍으면서 장면, 장면이 말하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몸까지 통째로 사로잡고 싶은 욕심.
너를 멈추게 하고 싶어, 너를 이곳에, 내 곁에 조금만 더 머물게 하고 싶어. 가지 말라고 울부짖는 침묵 속 외침 같은 거.
멈추어 섰다. 분주하게 무언가 정리하던 히잡을 쓴 여자들, 건물 사이 삐죽거리는 열대의 식물들, 중심으로 파고드는 리드믹한 건물의 선, 그리고 멈춰선 내게 너무 다가오지는 말라며 우리 사이에 이만큼의 아름다운 거리감으로 만족하라며 무겁게 솟은 바닥의 기둥들.
이렇게 잠깐 동안이라도 장면의 심해까지 파고드는 진한 시선을 보내고 싶어. 당신들에게 그런 시선을 받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