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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Jan 24. 2019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100가지 물건 버리기 프로젝트 

<100가지 물건 버리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내걸고서 시작한 집 정리가 

한동안 뜸했음을 고백한다. 

가장 큰 이유는 뭐든 '꾸준히'가 안 되는 이 망할 의지력과 쉽게 질리는 성격

그리고 천부적인 게으름 탓이렸다. 


"너는 니 새끼들을 이런 돼지 방구석에서 키우고 싶냐?"

가끔 손주 보러 우리 집에 오시는 친정 엄마에게 무수한 팩트 폭력을 당해도 그때뿐, 

장난감이 발에 채일 정도인 아이방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 안방, 주방, 드레스룸, 다용도실까지.. 

뭔가 정리가 안 되어서 늘 어수선한 상태 그대로 놔두길 반복했다. 

그 어수선함을 볼 때마다 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당장 뒤집어엎어서 싹 다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버리는 물건보다 들이는 물건이 더 많아짐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그렇다면 물건 버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리한다고 손을 대봤자 애들이 금방 어지럽힐 테고, 어차피 원래 상태로 곧 돌아갈 텐데.... 

그런 자포자기로 지내오면서 자연스럽게 100가지 물건 버리기 프로젝트도 중단되었다. 

결혼생활로 치면 '정리의 권태기'가 찾아온 셈. 

그렇게 침체되어 있던 나를 구제해준 건 다름 아닌 이 프로그램이었다. 


곤도 마리에의 넷플릭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넷플릭스에 빠져있던 내가 우연히 발견한 곤도 마리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가 미국의 가정집을 방문해 집 정리하는 걸 도와주는 프로그램인데 

첫 회부터 정말 빠져들었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어수선한 집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부부 사이도 멀어지고 있던 와중에 

곤도 마리에로부터 정리법을 배우면서 집을 변화시켜 나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남편이 창고에서 결혼식 액자와 DVD를 찾아내던 장면이었다. 

"이걸 창고에 처박아두었다니 속상하네요."

남편의 말을 듣자 나도 벽장 구석에 처박아두고 몇 년 동안 꺼내보지 않은 결혼식 앨범이 떠올랐다. 

정리는 본인에게 중요한 물건, 소중한 물건을 적정한 장소에 잘 보관해서 꺼내 쓰기 쉽게 만드는 것이라는 

단순 명료한 진리도 함께. 


아내가 옷장에서 자신의 모든 옷을 꺼낸 뒤, 옷을 만져보고 설레지 않는 옷에 '그동안 고마웠어' 하고 인사하고

버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곤도 마리에에 의하면 자신에게 지금도 '설렘'을 주는 물건만을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물건을 남길 것이냐가 정리할 때 참 어려운 문제인데 그 기준이 '설렘'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이 옷을 앞으로도 계속 입고 싶은지? 아니면 아무 느낌도 없는지?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면 설레는지 아닌지? 

이 그릇을 쓰면 기분 좋은지 아닌지?

앞으로 물건을 버릴 때는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판단이 쉽고 결정도 빠를 것 같다. 


나에게 설렘을 주는 옷은 무엇일까?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보고 나자, 우리 집에서 나에게 더 이상 '설렘'을 주지 않는 물건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버리든 말든 솔직히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었기 때문에 방치했던 물건들을 

격하게 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서 버린 물건은 바로 암체어! 

까만색과 빨간색 두 개의 의자가 세트였지만 공간이 비좁아서 한 개는 거실 창가에, 한 개는 작은 방에 두고 

썼다... 아니 쓰지 못했다. 

햇볕을 쬐며 책을 읽을 요량으로 일부러 빨간 의자는 거실 창가에 두었지만 암체어에 앉아 독서를 하는 호사는

애 둘을 키우면서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작은 방에 둔 까만 의자는 문만 열어도 부딪힐 정도로

공간을 많이 차지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는  의자 위에 이불, 쿠션, 가끔은 외투 같은 걸 던져놓아 

'앉는' 의자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지 오래였다. 

'앉으면 정말 편한데...' 

단지 이 하나의 이유로 의자의 기능을 상실한 암체어를 계속 끼고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이제 그 의자는 나에게 설렘을 주지 않으니 이젠 굿바이! 

그동안, (아주 아주 가끔이었지만) 앉을 때 정말 편안하게 해 줘서 고마웠어! 


어느새 의자의 기능을 상실한 채 공간만 차지하던 녀석들


의자 두 개는 필요한 사람에게 드림하고 의자가 차지하고 있던 소파 옆 공간에 매트를 깔았더니 

둘째 녀석이 알아서 기어들어가 아주 잘 논다. 세상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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