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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요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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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ㄴ May 01. 2019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오늘 요가원에 세번째로 갔다. 어제와 그저께는 같은 선생님(할머니 선생님)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선생님이 들어왔다. 젊고 아름다운 선생님은 아주 나긋나긋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를 인도말을 끊임없이 하며 내가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동작들을 해나갔다. 앉은 채로 양 어깨 위에 양 다리를 얹다가, 가부좌를 한 상태로 팔 힘으로만 공중에 떠 있다가, 누워서 다리를 머리 뒤로 넘겼다 다시 가져와서 공중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마지막으로는 편히 쉬라며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했던 물구나무를 했다. 쉬는 동작이라면서요.. 물구나무 무슨 일입니까..  



  이런 동작들이 요가에 존재하는 것은 알았지만 눈 앞에서 보니 뭐랄까, 좀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업을 듣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 동작들을 거의 비슷하게 따라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동작들은 인도에서 20년씩 수양한 사람들만이 가능할 것이라 무심코 생각해왔었는데, 알고보니 내 옆자리의 20대 여성분도 그 앞자리의 30대 남성분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매일 갠지스 강에 초를 띄우고 수양을 하면서가 아니라, 서울에서! 퇴근 후에! 강동구 지역주민 요가 수련원에 와서! 나는 이 대단한 사람들이 회사나 학교나 집에서 자신의 대단함을 어떻게 숨기며 참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내 옆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던 여성분의 회사 동료는, 자기 동료가 "오늘도 고생하셨어요!안녕히 들어가세요~"라고 인사한 후에 요가원에 가서 본인의 어깨에 다리를 걸고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것을 알까. 알고보면 매일 졸린 눈을 하고 과자를 먹으면서 'oo피디, 오늘도 일 하기 싫네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내 옆자리 동료도 퇴근 후에 어딘가에서 눈부신 탁월함을 뿜어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는 본인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어중간한 보통의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대단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세상이 조금은 재밌게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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