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메 Jan 08. 2020

친구야 나 사실 생강차 싫어해

그런데 네가 좋으면 그걸로 됐어


너와 나의 취향이

조금 다를지라도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무던하지 못한 나는 많은 음식을 가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잘 먹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리는 음식은 잘 먹지 못한다고나 할까. 삭힌 홍어, 멍게, 성게는 당연히 먹지 못하고, 계피, 민트맛 디저트, 고수도 못 먹는다. 그리고 또 싫어하는 식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생강이다.


 생강. 생강 지뢰는 다른 음식을 먹을 때 많이 밟아 보았다. 양념과 버무려져 있는 요리 속에 있던 생강이 감자인 줄 알고 씹었다고 놀래서 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생강을 씹었을 때 삽시간에 퍼지는 톡 쏘는 매운맛, 입을 채우는 텁텁함은 아무리 먹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저에일'이라는 것은 내 돈 주고는 절대 사 먹지 않는 것은 물론, 남이 굳이 사준다고 해도 수십 번 거절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난관에 봉착했다. 하필이면 내 친구가 진저에일을 좋아할 줄이야. 그냥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면 진저에일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할 만큼 진저에일을 좋아하는 친구. 진저에일을 파는 곳이 많지 않아 슬프다고 말하는 친구와 밥을 먹으로 레스토랑을 갔는데 하필 그곳에서 진저에일을 팔고 있었다면? 어찌 그것을 시키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친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친구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저, 즉 생강은 호불호를 많이 타는 음식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음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혹시 진저에일을 좋아하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옹. 그럼. 나 진저에일 좋아해. 허허.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친구는 빠르게 진저에일 한 병을 주문했다. 여기 진저에일이 진짜 맛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한 모금 마시기도 했다. 물론 나는 맛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는 바로 그 맛, 생강 그 자체였지만.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니까 됐어.

이게 날 곤란에 빠뜨렸던 문제의 진저에일. 병이 예뻐서 봐줬다.

배려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간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착해서,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불편한 듯 느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물어보는 친구의 물음에 신나게 '치킨!'이라고 대답했던 날이 있었다. 신나게 치킨을 뜯은 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친구가 3일째 치킨을 뜯어서 오늘만큼은 치킨을 먹고 싶지 않았던 날이었다는 것을. 이게 과연 미련한 행동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를 좋아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날 진저에일을 먹었던 만큼 친구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배려를 해줬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집순이이면서도 품을 들여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인간관계의 고리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인간관계에 진절머리가 나는 순간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오래 만날 인연들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 속에서 나는 진저에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상대가 원한다면 기쁘게 진저에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끊임없이 기대할 것이다.



 

 이런 나에게 2019 겨울은 참 힘든 겨울이기도 했다. 바로 엄마가 생강청을 어마무시하게 담그셨기 때문이다. 손발이 차서 고생하시던 엄마가 생강차를 마신 후로 진짜 손발이 따뜻해지는 효과를 보신 후, 우리 집에는 1일 2생강차령이 떨어졌다. 아침 먹고 나면 생강차, 저녁 먹고 나면 생강차. 생강차 마시기 싫다고 생떼 부리기엔 너무 커 버려 인상을 쓰며 마시기 싫은 티를 내보기도 했지만, 내가 어찌 엄마를 이길 수 있으랴. '엄마가 이렇게 만들어놓았는데 왜 안 먹어?'라는 말을 이길 수 있을만한 무언가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생강차를 마시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먹다 보니 좋아진 건 아니고, 익숙해졌다. 생강차 냄새만 맡아도 진저리 치던 상태에서 그냥저냥한 표정을 지으며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레벨업하였다. 아니, 이제 생강차가 좀 좋은 것 같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사서고생 여행을 추억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