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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Jun 19. 2020

내 발가락은 작고 소중하니까

여름이 왔으니 관심 가져보는 내 발(Foots) 이야기

여름이 찾아왔다. 매일같이 양말에, 운동화에 가려져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발가락의 맨살을 볼 수 있는 계절. 여름. 


나는 풋케어, 그러니까 발에 관해서는 무심한 편이다. 발이란 자고로 내 몸뚱이를 잘 지탱하고, 뚜벅뚜벅 잘 걸어다는 정도만 해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얇아지는 웃옷만큼 발의 겉옷도 벗겨야 하는 여름이 다가오면 내 관심사는 온통 발에 쏠리기 시작한다. 안보이던 뒤꿈치 각질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발톱 모양도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렇게 발에 신경 쓰게 된 건 어느 날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그날도 여름이었고,  더웠기 때문에 여느 때처럼 맨발에 샌들을 신고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내 발을 보며 부끄럽다고 했다. 페디큐어를 하지 않고 샌들을 신는 건 발가벗고 외출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그 소리에 "그러면 손가락에 네일을 안 하면 벌거숭이 손이냐!"라고 반문했었지만, 어쩐지 그때 이후로 페디큐어 하지 않은 내 발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야 외길인생. 길을 다니며 내 발을 쳐다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싶어 지금도 페디큐어 하지 않은 발에 샌들을 신고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니 페디큐어 안 했다고 양말에 샌들을 신을 수는 없잖아요?

신으라고 만들어진 신발일 텐데 왜 신지를 못해

이렇듯 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여름. 나의 발 고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 발, 특히 내 발가락은 아주 예민하다. 그래서 조리(일명 쪼리)를 신지 못한다. 원래부터 쪼리 형태의 신발에는 잼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걸 더 명확히 알게 된 건 일본 여행을 갔던 어느 날이었다. 코스튬 복장으로 기모노를 차려입었는데, 기모노의 완성은 나막신이라고 했다. 바로 그 나막신의 형태가 바로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에 끈으로 신발을 고정시키는 형태였다. 나막신을 처음 건네받았을 때 온몸에서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거 신으면 10분 만에 신발을 벗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복장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날 알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를 나막신을 신고 돌아다니는데, 그 한 시간 동안 내 발가락은 의자에 묶여 주리를 트는 형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딱 이대로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가 갈라져야 이 고통도 끝낼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때 이후로 쪼리 형태의 신발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문제는. 쪼리 형태의 신발 중에 예쁜 게 정말 많다는 것이다. 신께서는 왜 제가 예쁜 쪼리를 찾아내는 눈과 그 쪼리를 신지 못하는 발가락을 하사하셨나이까.

쪼리도 못 신는데 발가락링을 끼고 돌아다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 발가락들 사이사이에 는 아무것도 없어야 해

이렇게 한없이 예민한 발과 발꾸락이지만 나는 내 발의 수고로움을 안다. 특히 매년 증량되고 있는 무게를 견디면서 큰 불평이 없는 게 제일 고맙달까. 그래서 나는 아무리 이쁜 쪼리도 탐내지 않는다. 이미 고생하는 발에게 또 다른 고통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아쉬울 때도 있지만 세상엔 쪼리 형태가 아닌 이쁜 샌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가끔은, 내 발이 '인간적으로 진짜 페디큐어는 좀 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지 궁금하긴 하다. 사실 진짜 문제는 쪼리가 아니라 페디큐어이면 어쩌나 싶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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