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스(reference)는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크게는 예술, 특히 음악 분야와 논문에서의 뜻이 다르게 사용되는데, 음악 분야에서는 영감을 받았거나, 아예 주제 선율을 가져다가 새로운 창작을 한 그 대상을 뜻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논문에서는 논문의 어떠한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추가 정보나 기초 지식, 어떤 용어를 왜 썼는지,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그 출처를 통해 맥락 이해를 돕기 위한 문헌 등을 레퍼런스라고 합니다. 제가 책 읽기에 필요한 레퍼런스라고 할 때의 뜻은 논문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배경 지식이나 이해, 그런 것들이라고 말이죠.
저는 진정한 독서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몇 번의 뛰어넘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무난히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나라 교육이 입시 위주가 아니었다면 그 나머지 점프도 거뜬히 해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어른이 책 읽기라는 좋은 취미를 빼앗긴 데에는 개인의 게으름 외에 탓할 구석이 한 군데는 있다는 말입니다. 뭐, 그렇다고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출처: 핀터레스트
책 읽기라는 좋은 취미를 갖는데 방해가 되는 여러 요소들 중에 '집안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냐고, 책 읽는 취미조차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느냐고 반발하실 분도 계시리라 짐작합니다만, 저 자신이 뼈저리게 느낀 바로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개인적 경험입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집안 분위기 외에 중고등학생 시절 '모범생' 출신 역시 성인이 된 후, 실제 인생에 도움이 될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저였기에 '레퍼런스'에 대한 내용 중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책 읽기에 레퍼런스는 언제, 왜 필요할까요?
저는 동화나 전설을 벗어나는 과정, 문학작품으로 치면 소설로 옮겨겨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화나 전설은 익숙한 플롯과 어렵지 않은 사상을 담고 있어 특별한 레퍼런스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세계는 다릅니다. 소설과 동화, 둘 다 픽션이지만 우리의 세상과 어느 쪽이 더 닮았느냐고 묻는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소설을 말할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모험을 해도 죽음에는 이르지 않는 안전하고 포근한 동화 속 세상과는 달리 소설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어른의 세계의 입구에서부터 맞닥뜨리는 현실은 어떤 규칙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인물도 투명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돈의 세계입니다. 대부분의 민속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있는 이유, 대부분이 사춘기를 겪는 것은 두 번째 이유기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by. DALL.E
아마도 우리의 교육과정이 학습이 아니라 문해력에 집중되어 있다면, 각 나이대 성장 과정과 현실에 맞는 책 읽기가 교과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천도서 목록을 늘어놓고 읽을 테면 읽어보라는 식이 아니라 각 권을 읽고 자연스레 책에 대해 대화를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런 식의 학습은 평가하기가 어렵고 수많은 지식을 짧은 시간 안에 머리에 넣는 데 비효율적이니 교육과정에서 제외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어쨌든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책 읽기가 눈앞의 점수를 따내는 데, 즉 학생 개인의 등급을 올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범생이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집안 분위기'란 추천도서 목록을 뛰어넘을 만한 교양 있고 인문학적이며 화목한 데다 가족 간의 대화시간이 많은 가정이 줄 수 있는 환경입니다. 대화의 많은 부분이 인문학적, 시사교양적, 자연과학적, 예술적인 집안이라는 뜻이죠. 몇 가지 주제를 예시해 볼까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중동의 정세는 어떻게 변할까?"
"사춘기 때 호르몬 변화가 심한 이유는 뭘까?"
"김수철, 이자람, 안예은 같은 가수들의 작업은 우리 음악사에서 어떤 위치를 갖고 있을까?"
"왜 집중호우가 더 많아질까?"
생각만 해도 간지러운 주제들인가요? 아니면 명절 때 어르신들이나 할 법한가요? 하지만 이런 대화 주제를 자녀와 나누는 가정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19년을 살았다면, 아마도 성적과 상관없이 권장도서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동화에서 소설로 옮겨가는 것이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스스로 책 읽기에 빠지지 않은 청소년이라면 성인이 되었을 때 책과 멀어지거나 멀어졌는지조차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의 책으로 옮겨가고자 한다면, 임시나마 다리를 이용해 보면 좋습니다. 한두 번 강을 건너게 해주는 징검다리나 배다리(船橋) 같은 것 말이죠.
화성행행도, 김홍도 그림
청소년 소설을 건너 일반 소설, 특히 명작이라 일컫는 작품을 읽는다면 맨 앞의 서문이나 맨 뒤에 옮긴이의 말, 또는 해제를 먼저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때로 스포일러라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반전이나 플롯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인문학적 사상이나 문장 자체가 더 감동적일 때도 있습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읽어도 재미와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죠. 물론 백지상태에서 읽는 것보다는 의외성이 떨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서문이나 해제를 읽으면 작품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데다, 어째서 이 작품이 훌륭한지 그 가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특별히 서사구조 상 중요한 장면이나 명문장이라고 할 만한 '인용구'를 통해 작품에서 어디쯤에 집중해야 할지 힌트도 얻게 되죠. 그 자체로 레퍼런스가 되는 셈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없었다면 한글 탄생의 배경과 각각의 용례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해제는 읽으려는 작품에 다가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특별한 서문이나 해제가 없는 책인데 이해가 쉽지 않은 책들도 있습니다. 만화책에서조차 말이죠.
<테르미도르>표지, 김혜린 작품/ <베르사유의 장미> 표지, Riyoko Ikeda 작품
<테르미도르>나 <베르사유의 장미>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읽다 보면 이 만화의 배경이 궁금해집니다. 반대로 배경을 안다면 감동과 이해가 더 깊어지죠. 가장 좋은 것은 프랑스혁명의 배경과 전개와 결말까지를 먼저 공부하는 것이겠지만, 자칫 그러느라 손에 쥐었던 책을 읽기도 전에 지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포털에서 관련 내용을 간략하게라도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사실 예전에는 배경 지식을 읽는 방법밖에 없어서 지치지만 않는다면 레퍼런스 자체가 풍부해지는 효과가 있었지만, 일단 책 읽기라는 취미를 갖고자 한다면 본말이 전도되면 안 되겠죠.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하여 나온 여러 내용 중에서 믿을 만한 것을 선택하여 읽는다면, 책을 읽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사실은 알게 됩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작품 속 인물의 행동이나 선택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지죠. 물론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지식도 쌓이게 되면 제법 쓸모가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