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동지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실 ‘조리원 동기’라는 말에 부정적이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 >을 보며,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단지 아이의 출생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했다.
그래서 내가 지낸 조리원은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개인실 위주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그저 내 몸 회복과 아이 케어를 빠르게 배운다는 두 개의 목적으로 두고 입실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조리원 동기의 진짜 의미는 육아 동지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육아 동지가 얼마나 소중한 지도. 매일매일 크는 아이를 보며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을 때, 상대하는 타인이 오롯이 아이뿐이라 하루 종일 하는 말이라곤 ‘호로로’, ‘조심해’, ‘아이고 잘했어요’ 따위의 단어뿐일 때, 그럴 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바로 육아 동지들이다.
아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스킬을 빠르게 섭렵하며 큰다. 이때 부모의 적절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신생아 때는 졸리면 자야 하는 것과 잠들지 않고 우유를 먹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백일쯤부터는 손으로 물건을 잡는 것, 이유식을 먹는 때가 되면 음식을 씹는 것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려줘야 한다. 본능적으로 시도하긴 하지만 부모가 앞에서 꾸준히 도움을 주어야 배움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부모도 매일 성장한다. 삼십 년을 넘게 본인만 생각하며 살았던 나는 이제야 타인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매 순간 관찰하고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만약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결국 ‘왜 아이가 우는지 모르겠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육아만 하다 보면 사회에서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과연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예쁘게 꾸민 채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면 나의 창창했던 과거가 마치 전생처럼 아득해진다. 그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과 점점 멀어지면서 나는 외로워진다.
이러한 과정은 참 고되다. 단지 외롭거나 쓸쓸한 마음일 때도 있고, 뭘 해야 하는지 알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막상 시도해도 잘 되지 않기도 하다. 또 애초에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예전에는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웠다. 대가족이 함께 키우거나 같은 아파트 이모들끼리 공동 육아를 했기 때문에 경험을 공유하며 힘듦을 나누고 고생이 웃음으로 승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독박 육아가 흔한, 기껏 해봐야 출퇴근하는 남편과 같이 하는 경우라면 우리는 진짜 육아에 대해 이야기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아이의 천사 같은 순간 말고, 엉엉 우는 아이에 대해 혹은 잠을 못 들고 울부짖는 아이에 대해, 먹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힘듦을 나누며 이야기할 사람 말이다. ‘진짜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된다. 이 경험은 굉장히 소중하다. 육아란 원래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나의 힘듦의 무게를 조금은 나눌 수 있게 되니까.
조리원 동기는 없지만,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육아 선배나 육아 동지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 그래서 이들과 자주 전화나 영상통화를 하며 온라인으로 공동육아를 한다. 이들에게 좀 징징거리다 보면 그래도 마음이 풀리고, 몇 마디 토닥임이 그렇게 다정하게 느껴질 수 없다. 나는 매우 실용주의 타입의 사람이라 누군가 고민상담을 하면 항상 해결책을 주기 바빴는데, 때떄로는 ‘단지 공감받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조리원 동기는, 회사로 치면 입사 동기 같다. 팀은 달라도 모두가 처음이라 시작이 비슷하다. 가끔 밥 먹으며 어려운 점을 토로할 수 있고, 서로 기분을 나누며 다시 일터에서 기운을 얻을 수 있으니까. 수험생활을 같이 했던 고3 친구들 같기도 하다.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먼,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가장 의지를 하게 되는 친구들.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될 시간들을 같이 나누고 있다.
조리원 동기 같은 육아 동지들이 있기에 오늘도 간신히 하루를 살고 육퇴를 한다. 그러니 제가 전화해서 쫑알쫑알 대고 하소연해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ㅎㅎㅎ…
2월 20일 글 게시 후, 2월 21일에 많은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두서없는 내용임에도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글을 좀 더 다듬었어요.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