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인내심이다.
적절한 타이밍이 되면 아이는 스스로 배울 기회를 원한다고 어필했다. 부모는 이 타이밍을 잘 캐치해서 충분히 기회를 주고 가이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밤에 자다가 으앙 울고는 다시 스스로 잠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발을 동동 굴리던 내가 방에 들어가면 그 인기척에 아이는 다시금 깨서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스스로 잠들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했음을 깨우쳤다.
아이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것.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교육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주도 이유식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아이는 숟가락을 달라고 하며 직접 먹기를 원했다. 나는 이게 앞서 말한 ‘신호’라고 느꼈다.
아이주도 이유식이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우리는 죽으로 된 이유식을 스푼으로 입에 먹여주는 '스푼 피딩(Spoon feeding)'방식을 이유식 기간에 사용한다. 아무래도 모유나 분유 등 유동식을 먹던 아이들이 밥 같은 고형식으로 넘어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스푼 피딩을 했던 것 같다. 이때 모든 재료를 갈거나 작게 다져서 죽으로 만들어 입에 떠먹여 준다. 반면 아이주도 이유식은 아이가 직접 음식을 씹고 뜯고 즐길 수 있도록 집어 먹기 쉽게 만든 야채, 고기, 핑거푸드 등을 주고 음식에 대한 관심과 저작능력을 발달시키며 스스로 식사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아이주도 이유식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도 아이가 식사시간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밥을 먹는 일을 본인이 주도적으로 실행하면서 자신의 기호를 발견하고, 음식의 맛과 향, 촉각을 탐험과 관찰해 식사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다.
실제로 내가 신뢰하는 유튜브 소아과 선생님은 8개월부터는 직접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줘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도 그쯤 되니 꽤나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본인이 수저를 쥐고 싶어 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식사를 직접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기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가 잘 먹었냐고?
전혀. 음식을 제대로 입에 가져가기까지 한 달쯤 걸린 것 같다. 그러고도 식사를 하지는 않았다. 잇몸으로 질겅질겅 씹다가 적당히 으깨지는 것은 좀 먹었지만 대부분의 알맹이는 뱉어냈다. 제대로 된 식사는 두세 달 정도 이후였다. 6개월 차부터 간식을 줄 때는 원물 스틱을 으깨질 만큼 쪄주거나 과일 등을 손에 쥐어주며 직접 먹게 했기에 좀 더 빨리 가능할 것이라 믿었으나 간식과 식사에 대해 아이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두세 달쯤 지나자 여러 터닝포인트가 생기면서 아이는 잘 먹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게 됐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아이가 잘 먹지 않았던 두세 달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음식을 제공하는 양육자의 지친 몸과 마음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애초에 n개월 이상 아이가 식사에 익숙해질 수 있는 준비 기간을 넉넉히 예상해 마음을 잡는 게 좋겠다. (이 기간은 아이마다 다를 수 있으며, 나의 아이는 3개월정도 걸렸다.)
이때 ‘아이와 식사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는 중심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육퇴 후 쉬는 시간을 쪼개 삼 첩 반상을 대령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내던지는 아이 앞에서 얼굴이 굳고, 아이가 음식을 버린 바닥을 닦으며 '내 음식이 이렇게 맛이 없을까' 하는 식의 의미 없는 감정 소비에 시달렸다.
게다가 매 끼니를 새롭게 밥하고 청소하고 샤워하는 수준으로 씻기는 등 비효율적으로 움직인 탓에 육체적인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기도 했다.
사실 제대로 식사할 수 있는 능력(눈앞에 있는 음식을 인지하고, 손을 가져가 입으로 베어 물거나 입속에 넣고, 턱을 활용해 씹고, 적당한 덩어리를 삼키는 등)이 생기기까지 최소 2~3개월은 걸리는 것 같으니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받고 아이와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도록 의도적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
2. 흥미를 일으키지 않는 뻔한 반찬
어른인 나도 같은 반찬 두세 번 먹으면 질리는데, 아이는 다를까.
이를 깨달은 것은 친정 부모님과의 식사시간 덕분이었다. 그동안 나름 반찬을 다양하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의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새로운 반찬으로 아이는 비로소 식사시간을 즐기게 됐다. 아이는 이때 콩국수, 팥죽, 전복죽, 백합죽 등 새로운 식재료를 다채롭게 경험했다. 물론 나도 처음엔 다양한 식재료를 제공한다고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잘 먹지 않는 아이를 앞에 두고 몸과 마음이 지치니 요리가 귀찮아지면서 반찬을 돌려막으며 뻔한 식사를 제공했다. 이렇게 비슷한 반찬만 돌려막기 하며 ‘왜 먹지를 않니’ 했던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면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인내심’이다. 여러 종류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첫째는 화를 내지 않는 인내심이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겨우 정성스럽게 겨우 만든 음식을 아이가 뱉거나 바닥에 던지고 먹기를 거부하면 사실 굉장히 화가 난다. "너!!!" 이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고, 한숨이 푹 쉬어질 뻔한다. 이때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감정을 섞지 않고 딱 한 번만 ‘음식을 바닥에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한 뒤 식판을 치운다. '먹지 않을 거면 치울게요'라고 하고 실제로 식판을 치웠더니 아이는 어느새 배가 부르면 식판을 미는 등 치우는 시늉을 직접 했다. 그런 후로는 크게 반찬을 고의적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아이가 음식을 던지는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입 속에 넣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니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대안을 설명해 준다
두 번째는 아이의 기호를 찾는 인내심이다.
아이가 원하는 식감, 맛, 식재료, 요리 방식을 찾을 때까지 계속 시도해야 하니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른인 나도 좋아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고, 꽤나 까탈스럽게 이를 구분하는 편이니 아이에게 편식한다고 나무라지 않아야 한다.
책 <프랑스 아이처럼>에 따르면 같은 재료도 다른 요리법으로 접근해서 아이에게 계속 노출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과 식감을 최대한 존중해 다양한 음식을 다양한 요리법으로 제공하는 거다. 어느 날은 쩌보고, 또 다른 날은 삶아보고, 신선한 올리브 오일이나 기 버터에 구워보기도 하는 등 아이에게 맛의 새로운 세계에 계속해서 초대하는 거다. 실제로 우리 아이는 찌거나 삶은 소고기는 거의 먹지 않지만 구운 소고기는 매우 매우 잘 먹는다. 생 블루베리를 수백 개 먹더니 질렸는지 더 이상 먹지 않았는데 요거트와 갈아주니 잘 먹는다. 찐 양파는 먹지 않지만 구워서 캐러멜라이즈드 한 양파는 매우 좋아한다. 계란은 삶거나 찜으로 주면 좋아하지만 스크램블 한 것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방울토마토는 먹지 않지만 큰 토마토를 갈아주면 빨대를 쪽쪽 빨며 한잔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게다가 우리 아이의 경우 이가 좀 천천히 나는지 돌리 지난 지금에야 아랫니가 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적당히 잇몸으로 으깨 먹긴 하지만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은 먹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처음 시도하는 음식의 경우 가능하면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시도했다. 부드러운 콩밥도 좋아하고 생나또도 잘 먹는다. (여기서 불가사의는 옥수수다. 옥수수는 비교적 단단한데 매우 좋아한다)
세 번째는 청소를 대하는 인내심이다.
처음 아이주도 이유식을 시도하면 바닥에 흥건히 떨어진 음식들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청소가 많은 이유는 당연한데, 아이가 음식을 집어서 입에 가져가기까지 익숙하지 않거나 음식을 그저 촉감놀이 하듯 장난치고 던지며 놀기 때문이다.
우선 음식을 먹는 아이 앞에서 청소를 하는 짓은 금물이다. 아이가 다른 방해 없이 자신의 탐색을 즐길 수 있도록 지켜보고 식사가 다 끝난 후 청소하는 것이 좋다. 어른의 경우도 밥 먹는데 계속 참견하면서 닦아주고 귀찮게 하면 밥맛 떨어지듯, 아이도 비슷할 것 같다. 이때는 역시 같이 식사를 하는 게 최고다. 아이가 음식을 씹는 방법이나 수저 등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함께 식사하는 이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여러 아이주도이유식 책에 나와있다.
그리고 아이 주도 전용 거대 턱받이가 있으면 요긴하게 쓰인다. 아이가 즙을 짜고 빨고 하며 옷에 흘린 과일의 색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아이주도 이유식용 긴팔/나시형 거대 턱받이로 옷이 젖는 것을 예방하고 배와 아이 식탁 사이 틈에 음식이 빠지는 것을 막으며 한 번에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초반에는 바닥에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바닥도 따로 닦아야 하고 의자도 닦아야 하긴 한다. 바닥을 닦기 어려운 경우 방수용 매트를 구매해 식사할 때마다 사용하고 간단히 거둬서 청소하는 방법도 있다.
열심히 아이주도 이유식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가 잘 먹지 않던 어느 날 처음 의도했던 '음식 먹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기'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꾸 맘에 들지 않는 음식을 바닥으로 던지는 아이에게, 밥 먹고 배부르면 그릇을 엎으려는 아이에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때 감정을 섞게 되는 빈도가 높아지니 즐겁기는커녕 그리 기분 좋지 않은 날도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14개월이 되는 아기는 잘 먹는 편이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시작한 8개월 이후 첫 세달은 시행착오의 시간이었고 11개월쯤부터는 많이 흘리지도 않고 잘 먹는 날이 늘었다. 분명한 것은 가족이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다는 것. 여전히 아이가 식사를 할 때 온전히 내 식사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나 이것은 내가 고쳐야 하는 부분 같다. 나 조차도 식사를 즐기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이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 테니까.
요즘은 혼자서 숟가락으로 밥을 싹싹 긁어먹는 아이를 보며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외식을 가서고 영상이나 장난감 없이 본인 몫의 음식을 잘 먹고 가족과의 대화에 함께하는 모습을 볼때 정말 뿌듯하다. 좋아하는 반찬만 먹고 나머지 반찬은 손도 안대고 다 먹었다고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를 보면 살짝 안좋은 감정이 올라오긴 해도 ‘그래, 자기 입맛에 안맞나 보지’ 하고 넘길 수 있게 됬다.
예전에 엄마가 매끼니를 걱정하셨는데, 이 밤 나는 내일 아침 끼니를 고민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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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에 대한 이야기만 했으나, 사실 이것 만큼이나 매우 매우 중요한 것은 '하임리히 법'을 숙지하는 것이다. 아이가 음식 외에도 장난감 등을 잘못 삼켜 질식할 위험이 있을 때 사용해야 하니 영유아를 키운다면 꼭 여러 번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쳐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