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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Mar 21. 2024

굿 바이, 1인 1닭

어느 순간부터 1인 1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혼이 그 계기였다. 아내와는 21살부터 연애를 했다. 그 나이 또래가 그러하듯 치킨과 탕수육 그리고 족발을 열심히 먹었다. 대학생이었던 아내는 역시나 같은 과 후배였던 처남과 한 아파트에 살았다. 나와 여자친구(아내) 그리고 남동생(처남)이 모이면 곧잘 치킨을 시켜 먹었다.

      

셋이서 한 마리는 절대 불가했다. BBQ 황금올리브는 두 마리씩 주문하기에 비싸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에 주로 전화를 돌렸다. 그래도 항상 양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무까지 싹싹 비워 먹어도 어딘가 허기졌다. 고기를 즐기지 않는 아내의 식성을 고려하면 처남과 내가 무진장 먹어 치운 것이다. 식욕이 왕성한 두 마리 육식공룡. 우걱우걱 경쟁적으로 먹이를 흡입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치킨과의 결별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결혼을 하면서 집밥을 먹게 되자 된장국과 밑반찬이 제대로 갖춰진 식사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장인 장모님은 강릉 옥계에서 취미로 농사를 지으셨다. 두 분은 쌀이며 파와 양파, 고추까지 신선한 제철 농산물을 가져다주셨다. 거기다 때때로 갓 잡은 문어와 가자미가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있기도 했다. 게으른 나에게 쏟아진 축복이었다. 어른 곁에 살면 밥상이 달랐다.

      

싱싱한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그때그때 지은 밥과 함께 먹는 기쁨은 굉장했다. 기껏해야 김밥이나 시리얼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던 나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준다면 당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린내가 나던 묵은쌀과 햅쌀은 다른 종 같았다. 햅쌀은 압력밥솥에 밥을 지어 보면 좌르르 윤기가 돌고 향이 났다.


밭에서 씨를 털어 방앗간에서 짠 참기름과 들기름은 또 어떤가. 장기간 보관이 용이한 참기름과 달리 들기름은 산패가 빠르다. 뚜껑을 열었으면 가급적 먼저 먹어야 한다. 바로 짠 들기름에 새봄의 산나물을 무쳐 먹으면 봄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싱그러운 고소함이라고 할까. 로컬에서 재배한 제철 음식에는 자연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간장과 고추장, 된장, 쌈장 그리고 천일염을 전문가가 직접 담그거나 갈무리한 것으로 먹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파는 대량 생산 제품과는 다른 풍미와 깊이가 있었다. 유기농 채소와 과일, 장에 맛 들이니 한식이 너무나도 맛나게 느껴졌다. 배불리 먹어도 체중이 줄었다. 방귀 냄새가 덜 나고, 고통스러운 변비도 자취를 감췄다. 여러 나라의 여러 곳을 방문해 봤지만, 한국처럼 채소가 맛난 곳은 드물었다.     


충격적인 변화도 뒤따랐다. 그렇게나 애정하던 고기가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치킨은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충동조차 없었다. 치킨의 이미지를 가만히 떠올리면 오히려 식욕이 줄었다. 기름에 닭고기를 튀겨 합성 소스를 발라먹는다는 발상이 다소 괴기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마치 밥그릇에 치토스나 포카칩을 부숴서 숟가락으로 퍼먹는 기분이랄까. 1인 1닭을 하던 치킨 마니아의 변심이었다.     


물론 고기를 아얘 끊은 것은 아니었다. 직관적으로 고기는 기운을 솟게 하고 맛있지 않은가. 돼지고기 김치찜은 여전히 밥도둑이었고, 진하게 끓인 닭국과 닭칼국수는 겨울에 빠질 수 없었다. 다만 예전처럼 삼겹살을 대량으로 구워 먹고 싶지 않았다. 스테이크 하우스는 발길을 끊은 지 한참이었다. 고기가 밥에 곁들여 먹는 '반찬'으로 전락한 것이다.      


어째서 여전히 '맛있다'라고 느껴지는 고기가 예전처럼 끌리지 않는 걸까. 뭔가 내 몸이 판단하기에 '고기'를 줄이는 편이 더 이득인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설날에 소갈비를 먹으며 생각했다. 장모님이 한우로 구워주신 갈비였다. '음, 안 질기고 괜찮네. 그렇지만 집에서 해 먹고 싶지는 않아. 다음 명절에 먹어야지.'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소갈비는 조금 먹고, 도라지나물과 고사리를 크게 떠서 밥 위에 올렸다.     


식탁에서 육식 비중이 줄어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불편함'에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바일 게임을 지우면서 깨달았다. 킹덤러시라는 모바일 디펜스 게임이 있다. 스물 여덟의 나는 공략집을 읽고 수차례 시도를 거듭해서 게임을 클리어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밤에 아이들 재우고 게임을 하려니 피곤함이 밀려왔다. 잠 줄이고 머리 써가며 보스 몬스터를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게임은 참으로 불편한 놀이군, 쿨쿨 잠이나 자야지. 정말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 버렸다. 어머니 눈을 피해 새벽 몰래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던 오락실 죽돌이는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고기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불편하다. 맛있고, 뭔가를 차려 먹는다는 기분이 나지만 성가신 요소가 있다. 구울 때 기름이 튀고 집안에 냄새가 밴다. 소화가 원활하지 않다. 저녁에 고기를 잔뜩 먹으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또 고기 외식은 다른 음식에 비해 더 비싼 편이다. 고기를 줄이면 그 비용으로 유기농 야채와 과일을 종류별로 구비할 수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느낌인데, 육류를 배부르게 먹은 날은 평소보다 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     


고기의 장점과 단점을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해 보면 현재의 나에게는 마이너스가 더 크다. 한 마디로 고기는 ‘다소 불편한 음식’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찾아왔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십 년 전으로 날아가 과거의 나에게 고기가 별로라는 소리를 한다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어른이 되면 어느 정도로 돈을 벌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확신에 차 대답했다. 아무 때나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서 가격표 안 보고 시키는 사람이면 될 것 같다고. 스테이크도 척! 얼음같이 차가운 생맥주도 척! 소화 능력 짱짱한 부자!      


아, 이 청소년은 알까. 충성스러운 고기맨이 이십 년 후 대장 내시경 검사를 겁내는 어른이 되리라는 사실을. 베이비 립 본은 무슨, 청국장이 슈퍼푸드야. 맛있고 속 편해! 를 외치게 되는 아저씨가 될 것이라는 진실을 말이다.


과거의 나야, 치킨은 먹을 수 있을 때 재주껏 먹어 둬. 스포일러 짓을 하나 하자면, 1인 1닭이 네 소화 능력의 최고치야. 거기가 정상이라고. 정상에 오른 뒤에는 내려올 일만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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