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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May 04. 2024

이번 어린이날 선물, 저는 파격적으로 골랐습니다

유행에 따른 장난감 쓰레기도 줄이고 돈을 관리하는 법도 배우는 경험 선물

최근 진열장에 추가된 캐릭터 장난감. 차마 예쁜 쓰레기라 부를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달력은 선물 시즌을 알려주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서로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생일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입학, 어린이날, 추석, 설날, 핼러윈, 크리스마스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이벤트가 무척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각 이벤트에는 맛있는 음식과 선물이 세트 메뉴처럼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해마다 반복된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크고 작은 선물을 많이 샀다. 서너 살 무렵에는 복슬복슬한 돼지 인형을, 유치원에 가서는 킥보드를 마련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장난감 유행은 쓰나미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한때는 슬라임이 온 동네를 주름잡다가도 뒤돌아 보면 어느새 포켓몬스터가 세상을 점령 중이었다. 한 번 유행의 바람을 탄 캐릭터는 필통과 비디오 게임을 넘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그만큼 소비해야 할 콘텐츠도, 선물의 양도 늘었다.


과대포장의 심각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린이 선물의 포장은 만만치 않았다. 가령 건전지로 작동하는 강아지 인형의 경우 커다란 상자에 담겨있었다. 목줄과 이름표 등의 부속품은 따로따로 개별 포장 상태이며 모두 고정을 위해 끈으로 묶여 있었다. 화려한 포장은 짧은 언박싱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폐기물 문제와 더불어 점점 높아지는 선물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플라스틱 블록만 해도 그렇다. 다섯 살 이전까지는 국산 제품을 샀다. 글로벌 기업인 레고와 똑같이 동물원 테마를 다루고 피규어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격은 거의 반값이었다. 어차피 우리 부부는 육아 SNS도 하지 않으니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비싼 제품을 살 필요가 없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가 변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은 학부모끼리도, 아이들끼리도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란 아이들이 더 많은 장난감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언급되었다. 가급적 좋은 말로 달래 거절했지만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 가방에는 일본 캐릭터 시리즈 키링이 주렁주렁 달렸다. 불빛이 들어오는 운동화를 찾기도 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많은 물건들을 자식에게 어떻게 다 구해다 주는 거지. 고물가라고는 하지만 아이가 귀한 시대에 어른들은 아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듯했다. 본인은 스파 브랜드의 저렴한 옷이나 시즌 오프 세일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는 백화점 브랜드 코트를 입혔다. 심지어 약국 매대에 있는 장난감이 동봉된 비타민도 덥석 쥐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물질이 귀한 시대는 결단코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중고로 구입한 레고. 새 제품과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국내산 블록 생활에도 변수가 발생했다. 레고가 '진짜'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블록이면 블록, 인형이면 인형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어떤 브랜드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지 알게 되었다. 3학년쯤 되자 어떤 휴대폰이 더 고가인지 말하기도 했다.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와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합쳐서 7년에 달하는 육아휴직을 했기에 값비싼 장난감을 모두 사줄 수가 없었다. 다량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도 마음에 걸렸고. 그러던 차에 작년 크리스마스에 아이가 레고를 사달라고 했다. 나도 레고에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고 감정 이입이 가능한 플라스틱 장난감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가 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이와 함께 레고 공식 사이트를 둘러보는데 가격이 상당했다. 게다가 장난감 수납장도 이미 꽉 차 더 넣을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 피카츄의 번개처럼 머리를 찌르르 때리는 생각이 들었다.


'보관이 힘들 만큼 장난감이 많은데 우리는 왜 또 크리스마스 선물을 알아보고 있지? 크리스천도 아니면서.'


이렇게 장난감이 많은데 또 사야 할까?


쇼핑몰을 띄운 컴퓨터에서 손을 뗐다. 그야말로 습관적으로 선물 명목의 장난감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두 아이 손을 잡고 장난감 진열장 앞에 섰다. 해 봐야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렇게나 장난감이 가득한데 또 사야 할까. 대답은 응, 당연히.


우리는 장난감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스쳐가는 기억 속에 겨우 남아있던 장난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뽑기에서 나온 태엽 자동차, 그림책 부록으로 첨부된 공작새, 공항 편의점에서 산 led 불빛 팽이.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하듯 과거의 장난감들을 한참 분류하며 놀았다. 아마 날을 잡아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또다시 잊힌 채로 방치되어 있었을 과거의 유산이었다.


한 나절이 지나자 오랜만의 반가움도 가셨는지 장난감은 다시 방치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제한했다. 안 쓰는 장난감을 비우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레고를 사주겠다고. 무한정 선물을 사들이기만 하면 돈을 낭비하게 될뿐더러 집안 정리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가정생활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적정 장난감량을 제안한 것이다.


큰 녀석과 작은 녀석은 20리터 규격의 종량제 봉투를 나란히 들고 장난감 수납장 앞에 섰다. 몹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둘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처럼 신중하게 사안을 논의했다. 어떤 녀석을 살리고 어떤 녀석을 버릴 것인가. 두 사람의 만장일치로 '굿바이' 결정이 나면 그 장난감은 즉각 쓰레기봉투행이었다.


길고 긴 집중의 시간 끝에 종량제 봉투 두 개가 채워졌다. 두 아이의 얼굴에는 홀가분함과 아쉬움 그리고 뿌듯함이 복잡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미련이 남았을 텐데 용케 결심을 굳혔다. 나는 약속대로 레고를 사 주기로 했다. 다만 중고로.


과거에 팝잇(혹은 푸시팝이라 부르는)을 당근 거래로 구매한 적이 있었다. 구매 현장에 큰 아이를 데리고 가서 직접 대금을 전달하게 했는데 무척 즐거워했다. 팝잇 거래는 중고품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중고 시장에 뜨는 매물은 새 제품 보다 최소 40% 이상 저렴했다. 그리고 판매자를 잘 만나 관리가 잘 된 물품은 새 제품과 별 반 차이가 없었다. 덕분에 큰 아이 작은 아이 선물 비용을 모두 모아 서로가 마음에 드는 중고 레고 제품을 고를 수 있었다. 예비 쓰레기를 구출한 기분에 부모인 우리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용감하게 처분한 장난감들. 아이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파격적인 어린이날


올해 어린이날 선물은 더욱 파격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형태가 있는 장난감을 미리 사지 않았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 선물 사주라며 용돈을 주셨다. 합쳐 보니 한 명 당 십만 원. 우리는 그것을 물건으로 바꾸지 않고 아이들 재량에 맡겨보기로 했다.


어린이날 당일에 축제에 가서 하고픈 체험을 하거나, 먹고 싶었던 외식 코스를 직접 고르는 것이다. 돈을 반드시 다 쓸 필요도 없다. 남은 금액은 지갑에 돌려주기로 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준 선물은 소비의 주도권이었다. 멋들어진 포장지에 담긴 장난감도 재미가 있겠지만 직접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궁리하는 기쁨 또한 크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연습장에다가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적고 있다. 와플부터, 멕시코 요리, 더블 주니어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식사와 디저트를 아우른다. 축제장에서 하고픈 체험 리스트도 길다. 비즈 아트, 디폼 블록, 솜사탕 만들기. 이 중에서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어쩌면 계획한 대로 하나도 못 하고 그날 꽂힌 대상에 몽땅 돈을 써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의미심장한 두 가지는 남지 않을까. 하나는 선물을 물건이 아니라 경험으로 받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소유하지 않으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고 자원의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나는 그저 애들 뒤나 따라다니며 돈을 흘리지는 않는지 바닥을 잘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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