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때문에 분가해야 하는 이유
이게 다 고구마 때문이라고!
동네 내과에서 6개월마다 당화혈색소 검사를 한다. 5.7~6.4까지 당뇨 전단계에 해당된다. 6.3으로 시작된 나의 수치는 일 년 반 동안 6.5>6.1>6.5로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는데 오른 시기는 동절기로 햇고구마가 수확되는 때와 일치한다. 석 달 전 다른 내과에서 검사할 땐 6.0까지 내려갔었는데 고구마가 수확되자 세 달 사이에 다시 0.5가 올랐다. 고구마가 내 당뇨 수치를 올리는 핵심 주범이다. 당연하지만 고구마는 죄가 없다. 먹는 내 입이 죄일 뿐!
딸은 고구마를 간식으로 배고플 때마다 서너 개씩 먹고 외출할 때도 항상 싸가지고 다니며 건강한 식생활을 하려고 한다. 문제는 내가 딸을 위해 쪄놓은 고구마를 참지 못하고 먹는다는 데 있다. 조심하느라 식사의 마지막으로 현미밥을 두세 숟갈 먹고 고구마 반 개 정도를 먹긴 하지만 고구마는 탄수화물 덩어리에다 당도까지 있어서 당뇨인에게는 극히 해로운 음식이다.
딸이 여행을 가게 되면 현관에 상자째 놓여 있는 고구마를 찔 필요가 없어서 식탁 위에 찐 고구마가 없기 때문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구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건강에 해로우면 당연히 안 먹어야지 그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커피 믹스에 중독되어 하루 두 잔씩 먹는 사람이라 그 말을 무시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커피 믹스를 끊을 테니 나에게 고구마를 끊으라고 제안했다.
그렇게까지 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지만 먹는 것에 담백한 남편은 별로 집착하는 음식이 없고 간식도 먹지 않으니까 내게 훨씬 불리한 제안임이 틀림없다. 검사 당일은 의기소침해져 더 이상 뭘 더해야 할까 낙심이 되었다. 의사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근력운동을 하라는 간단한 처방을 내렸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그 두 가지가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려운 줄!
인슐린은 췌장의 기능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는 경우엔 식이나 운동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자신도 아버지가 당뇨라 6.2의 수치라고도 했는데 이건 평생의 숙제이자 인고의 질병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래서 환자들이 투병 의지를 잃고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당뇨병이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버티기는 하지만 수치를 개선하기 위해선 음식 앞에서 절제가 필요하고 식후마다 운동으로 당을 털어내야 하는데 한결같이 꾸준히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빵 떡 면 당질 등 당뇨에 해로운 음식은 거의 끊었는데 고구마철이 되어 또다시 수치가 오르니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저 고구마를 먹지 않기 위해선 고구마 없이는 안 되는 딸을 분가시키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결론 내렸다. 근력운동은 그걸 피하기 위해 다른 운동을 돌아가며 했지만 결국 헬스클럽에 PT를 등록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요가, 점핑, 댄스, 실내자전거, 만 보 이상 걷기, 계단 오르기를 열심히 했지만 결론은 근력 운동이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피할 순 없게 되었다.
마침 알던 부동산에서 집 근처에 오피스텔 전세가 나왔다고 연락이 와서 어제 딸들과 함께 둘러보았다. 새로 인테리어를 해서 주방이 깨끗하여 딸이 보더니 자기가 딱 원하던 주방이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전세라던 말이 바뀌어 전세를 낀 매매라고 하고 가격도 착오가 있었다. 원래 부동산에서는 먼저 말을 던지고 보는 건지 매매 의사는 없었는데 전세가 아니라고 하니까 주방이 아무리 근사해도 얘기는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도 얻은 건 있었으니 고구마만 참으면 3억 3천만 원을 아낄 수 있다.(그렇다고 그 돈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이틀째 고구마를 먹지 않고 외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세상 고구마가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