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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Feb 28. 2024

전원주택에서 8년째 살아보고 느낀 점

귀찮다. 괴롭다. 힘들다... 그래도 즐겁다!

봄이 오고 있다.


시골집의 농사와 마당일이 시작되는 봄이 다가온다. 귀찮다. 셋집에 살았던 시기를 보태면 시골 살이 십 년이 되고 보니 해마다 봄꽃을 보며 기뻐하던 마음도 희미해지고 벌써부터 자라기 시작하는 풀이 성가시게 느껴진다. 잔디밭 가장자리엔 잡초가 무성하게 퍼져 손으로 뽑아내기엔 글러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풀만 죽인다는 제초제를 뿌리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벌레가 기승이다. 온갖 날벌레와 꿈틀거리는 벌레와 물것들에게 시달리는 여름은 그래서 괴롭다. 집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면 거미나 그리마, 무당벌레, 꼽등이, 지네 중 하나여서 천이나 집개로 감싸 내보내긴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집 밖으로 나가면 밤낮없이 산모기가 반갑다고 덤빈다. 그러나 조그만 먹파리에게 물리면 산모기는 애교일 뿐, 며칠을 긁어대며 괴로워해야 한다.


노루 꼬리만 한 짧은 가을을 즐기려 할 새도 없이 돌담 아래 심어진 커다란 벚나무에서 엄청난 양의 낙엽이 떨어진다. 쇠스랑으로 긁어 포대에 담아 여러 번 옮겨야 하는 연중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겨울의 주말주택은 냉동 창고가 되어 아주 춥다. 대여섯 시간 동안 보일러를 계속 가동해야 기가 가신다.  두 집 살림 하면서 오나가나 청소하고 오며 가며 짐 나르고 끼니마다 밥 해 먹어야 하는 수고가 힘들다.



담도 울도 없는 우리 집에 와서 볼 일 보고 가는 이웃집 개
먹파리는 주로 눈가나 귓바퀴를 문다.
눈 쌓인 고무신.. 시리다.


 귀찮고 괴롭고 힘든 주말의 전원주택 생활은 내가 좋아하는 고생이니 그래도 즐겁다. 지인 중의 어떤 부부는 주말이면 전국을 쏘다니며 여행을 즐긴다. 지난 주말은 양양의 대보름놀이에 가서 횃불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장시간 운전해서 사람 붐비는 곳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 부부가 대단하다고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시골집에 앉아 먼 산과 마당의 잔디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부귀영화는 대체 무엇이냐며 세상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된다. 이제 곧 텃밭의 흙을 뒤집어 모종과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면서 키우다 보면 석 달만에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꽃밭에는 가장 먼저 수선화가 피고 튤립과 앵초가 꽃봉오리를 올리는 걸 시작으로 여러 가지 봄꽃들이 자고 나면 하나씩 피어있다. 아침에 새로 핀 꽃을 보는 즐거움은 마당을 가진 사람만이 누리는 특별한 기쁨이다.


여름이면 텃밭에서 나는 농작물로 시골 밥상을 차려 맛나게 먹는다. 방금 딴 풋고추, 오이, 가지, 상추, 부추, 얼갈이 따위로 반찬을 하면 싱싱한 재료가 주는 맛이 따로 있다. 혀가 깨금을 뛰며 춤추는 맛이다.


세월이 갈수록 귀찮고 괴롭고 힘든 시골집 생활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어서 봄이 얼른 오기를 오늘도 기다린다.


수선화
앵초
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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