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고 하는 건 다 잘하는 손위 시누이가 있다. 집안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농사일과 마당일도 척척 잘해서 나는 언제나 형님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대여섯 살 때부터 냇가에서 손수건으로 빨래 놀이를 하며 주부의 소질을 보인 그녀이다 보니 야무지기가 강가의 차돌멩이 같다. 그런 형님과 가까이 살면서 나는 항상 어딘가 모자라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난 주말, 시골집에 가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시누이는 봄에는 쑥을 캐고 여름엔 호박잎과 고구마순을 따기 위해 시골집에 함께 오곤 했다. 우리 집 텃밭의 고구마순이래야 보잘것없어서 마당 넓은 이웃집의 고구마순을 따기로 했다. 작년에도 그 집의 신세를 졌기에 이번에는 베이커리 카페의 맛있는 빵을 사들고 갔다. 시누이의 성당 교우이기도 했던 집이라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다.
긴팔과 긴 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모자까지 뜨거운 날씨에 중무장을 하고 고구마순을 따기 시작했는데 커다란 소쿠리 두 개에 각자 따고 보니 내 것의 양이 더 많아 보였다.
나무 그늘에 앉아 껍질을 까고 나서 고구마순을 비교해 보더니 시누이는 약간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보다 손이 빠르고 일머리가 뛰어난 시누이인데 올해 칠순인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느새 시골살이 십 년이 된 나는 농사일에 익숙해져서 밭을 오가며 순식간에 호박잎을 따고 커다란 호박 이파리에 가려 잘 안 보이는 호박도 곧잘 찾아서 따오니 시누이는 역전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올케가 시집온 지 삼십 년이 되니 이제 나보다 더 선수가 되었네."
인디언 추장같이 무섭던 시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의 성정을 그대로 닮은 시누이를 삼십 년간 겪으면서 똑소리 나게 알뜰하고 부지런한 두 모녀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농사가 때를 놓치면 안 되다 보니 저절로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시누이는 그런 나를 두고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고 했다. 움직이는 걸 그렇게 싫어하더니 운동도 알아서 잘하고 건강식으로 식성이 바뀌었다고 딴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나야말로 모든 일에 자로 재듯이 정확하던 시누이가 음식 재료를줄 맞춰서 가지런히 하지 않고 대강 손질하는 걸 보고 놀랍기만 했다. 옆에서 거들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방식과 절차가 철저했는데 이젠 뭐든 수월하게 하려는 걸 보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걸 느꼈다.
옷을 입는 것도 그렇다. 그레이나 아이보리 아니면 블루 계통의 차분한 단색을 주로 입던 시누이가 이젠 빨간색 옷을 입고 꽃무늬까지 소화하는 걸 보고 내게 들어온 핫핑크의 원피스를 시누이에게 권해보니 이젠 칠십이라 입을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시누이와 보낸 삼십 년의 세월은 그냥 흐르기만 한 건 아니어서 한 번씩 감동을 받을 때도 있다. 시골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자 시누이는 봉투를 꺼내더니 남편에게 주었다. 업무와 관련된 대학원을 다니는 남편에게 등록금에 보태라는 것이었다.
펄쩍 뛰며 사양했지만 꼭 한 번은 학비를 주고 싶었다는 시누이의 말에 눈물 많은 남편이 울 것으로 기대를 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