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이 뒤통수를 때릴 때
시골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퇴실 준비를 한다. 창마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빼놓고, 냉장고에서 가져갈 농작물을 잊지 않고 챙긴다. 여름에는 제습기에 호스를 꽂아 연속 제습으로 작동시키고,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기 전, 화장실과 창고의 전등이 잘 꺼졌나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고 도시로 출발한다.
그런데 급하게 퇴실 준비를 하다 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는데 그중 가장 낭패스러운 일은 중요한 서류나 가방을 두고 오는 것이다. 남편이 업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백팩을 안방 책상 위에 두고 그냥 출발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짐을 내릴 때야 그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방을 두고 왔어."라고 말했을 땐 어찌나 막막한지 몰랐다. 혼자 보내기가 그래서 함께 왔던 길을 되짚어 한 시간가량 걸리는 시골집을 도로 다녀왔던 적이 십 년 동안 두 번 있었다.
월요일이면 오카리나를 배우러 다니는데 옆집 지인이 전화를 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했더니 지인 남편이 주말 동안 작업한 USB를 시골집에 두고 왔다면서 한 시간 반을 다시 가야 했다는 것이다. 밤이 늦어 시골집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했다고 한다. 직장인이 월요일 아침을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알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화장실 전등을 안 끄는 경우가 있는데 시골집에서도 그렇게 켜놓은 채 두면 일주일 동안 계속 켜져 있는 일이 가끔 있어서 그 정도는 "불을 안 껐더라?" 한 마디만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밭에 물 주다가 수도를 켜두거나 미처 안 닫은 창문이 있거나 하면 아직 출발하지 않은 옆집에 연락해서 봐달라고 해야 한다.
옆집이 새로 지어서 이웃하며 지내니까 든든하고 심심하지 않다. 잡풀이 우거져 밀림 같던 옆밭에 잔디밭이 넓은 깔끔한 새집이 들어서니 눈 맛도 시원하고 뱀이 나올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몇 년 전에 이사 온 앞집 어르신은 과실수를 키운 경험이 많아서 올해 처음으로 우리 마당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는 경험을 했다. 작년에는 늦더위로 배추를 한 포기도 못 건졌는데 올해는 어르신이 돌봐주셔서 한 포기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났다.
시골살이가 십 년이 가까워오니 호젓하던 집에 울타리를 함께 하는 이웃집이 생기고, 귀인 같은 어르신이 아침저녁으로 우리 마당을 둘러보시며 나무와 텃밭을 살펴주시는 복을 만났다. 옆집 지인도 나만큼 복이 넘치는 분이라 잔디를 심어놓으니 비가 알맞게 내려주고 배추 농사는 심은 첫해부터 어르신의 도움으로 실패 없이 자라나고 있다.
지인의 남편분은 요리를 잘하신다. 남편보다 먼저 시골집에 와서 혼자 있는 나는 밥을 안 하고 지내는데 옆집에서 반찬을 주니 든든하게 끼니를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외식도 즐기는 옆집 덕분에 집밥이 그저 최고인 줄 알던 남편과 나도 식사 준비에서 벗어나 맛집을 다니는 호사도 누린다.
시골살이의 낭패가 소재였는데 쓰고 보니 십 년 살이의 자랑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