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자와 나의 백일반지를 보며...
지금으로부터 14년전 어느 여름날.
200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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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인 3년차였을 때,
대학교 졸업반인
공대생 남자를
소개팅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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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첫만남에 남방 한장, 면바지, 맨발에 샌들을 신고 나왔다. 정장차림으로 나간 내가 무색할 정도로 캐쥬얼했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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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이 같으니 말 놓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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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가 무색하리만치 나는 깍듯하게 존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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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만나다가 아니면 헤어질 사인데 뭐하러...'
내 속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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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날 먼발치에서 언니의 소개팅상대를 힐끗 보고 지나간 나의 친동생들이 그에게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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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나와' (얼굴이 못 생겼다고..)
'스치는 바람' (언니를 스쳐지나갈 남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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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나는 그남자와 14년째 얼굴을 마주하고 지내고 있다. 그가 바로 한지붕 아래서 같이 살고 있는 '내남자'다. 나의 두 아이들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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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밥을 사줬다.
"학생이시니까 제가 낼게요..."
"그럼 제가 술을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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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14년째 밥을 사주고, 밥을 차려주고, 술을 사주고 나눠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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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우리의 12주년 결혼 기념일이다. 시간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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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이 백일반지의 힘(?) 덕분인지 우리는 함께 사랑하고 때론 서운해하면서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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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들의 결혼반지보다 이 백일반지가 더 좋다. 어딜가도 이 반지를 끼고 외출한다. 집에 있을 때도 세수와 동시에 끼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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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오늘에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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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백일반지를 사던 날 밤에 내가 했던 말이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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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반지는 내가 살테니, 내반지는 그쪽이 사줘요. 설령 헤어지더라도 손해보는 일 없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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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나는 설령 남자친구일지라도 거저받거나 신세지지 않는 여친이고자 했다. 아내가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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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지지 않는다', '우는 소리 하지 않겠다', '희생하며 산다고 징징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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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한 입장에서 관계를 유지하고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동등한 입장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겠다고 생각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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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부부사이에 '동등함'을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사랑'이 답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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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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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다 되는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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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진정으로 깊이 사랑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만큼 나의 반쪽을 사랑하고 우리 사랑의 결실인 자녀를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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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따스한 햇살아래 손잡고 걸어가는 중년의 부부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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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의 주름살마저 닮은꼴인 그들을보며,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둔 나는 오늘도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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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다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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