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오징어 게임
1월 2일.
AM. 7시.
낯선 번호의 문자.
“ 오늘 생활 치료 센터 입소 예정입니다. 안내문을 확인하시고 입소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
수많은 확진 후기에서 본 현실판 ‘오징어 게임’ 같다는 생활 치료소 입소가 정해졌다.
아직 몇 시, 어디, 접선 장소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익명의 문자에 마음이 바빠졌다.
확진 이틀째인 어제까지도 시설 입소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식구들은 모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로 각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미덥지가 않아서 환기와 소독을 수시로 하며 2차 감염의 우려를 다스리고 있었다.
확진자가 폭발하고 있는 시기라 정부에서도 재택치료를 권하고 있었고, 이제 미열에 코막힘 증상만 있는 나같은 경증 환자를 치료소에서 받아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시설 배정 문자가 온 것이다.
이미 증상 발현 후 5일이 지나고 있었고, 돌아오는 목요일쯤이면 격리 해제가 될 테지만 굳이 시설로 입소하기로 한 것은, 확진 가족이 집에 있을 경우 동거인 중 백신 미접종자의 격리 날짜가 확진자 해제 이후 열흘이 더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럼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는 총 이십일의 격리, 그저 엄마가 확진된 것일 뿐인 우리 딸은 본인이 음성 입에도 불구하고 한 달의 반 이상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하니 낯선이 와의 2인 1실에 갑작스런 격리시설 행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그나마 이 도면 운이 좋은 케이스(코로나 확진 마당에 운을 논하긴 민망하지만) 시설에 자리가 없어 서울에서도 멀리 강원, 경남까지 다녀온 사례들도 있다 하니 수도권에 위치한 시설에 입소하게 해 준다니 감지덕지였다.
미션 시간은 오후 12-1시가 될거라는 통보와 함께 부리나케 짐을 챙긴다. 무조건 가서 쓴 물건은 전자기기를 제외하고 모두 폐기시킨다 하니 버리려고 모아둔 옷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어울려 보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코디를 하고, 장바구니에 짐을 쌌다. 버려도 되는 옷과, 버려도 되는 책, 아깝지 않은 일회용 화장품들을 챙기고, 모든 바이러스야 날아가라는 주문을 외치고, 모든 창을 다 열고, 준비 완료.
12시 10분.
비닐장갑에 마스크 착용, 엘리베이터는 사용금지 계단으로 내려오라는 문자가 발송됐다.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사용해도 되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로 온 동네에 커밍아웃한 마당에 아무리 마스크를 이중삼중으로 써도 엘리베이터 탑승은 어려울 것 같았으나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혼자 18층을 내려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기 때문이다.
미션 시간 10분 전.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마치고 짐을 나서기로 했다. 남편과 딸은 내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 중문과 현관문을 열어두고, 거실에서 말하지 말고 바로 나갈 것!이라고 주문을 했다. 영상통화로 인사를 마치고, 엄마 사랑해, 여보 사랑해 카톡을 수신 후, 담담하게 집을 떠났다.
버릴 것으로 가득 찬 짐가방을 들고, 무거운 머리로,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낀 채 18층 계단을 빙글빙글 내려가는 꼴이라니. 혹시라도 누구라도 만날까 불안하고, 비닐장갑엔 자꾸 습기가 차고 머리는 어지러워 자칫하면 계단에서 구를 뻔한 위험 상황이 두세 번. 아슬아슬하게 미션 장소인 아파트 정문에 도착.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긴급이송 스티커가 붙은 스타렉스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르륵, 문을 열리고, 별생각 없이 차 안의 일동에게 “안녕하세~”를 뱉다가, 앗 이럴 상황이 아니란 생각으로 차에 탑승. 다들 어찌 된 운명인지 30-60대의 남자 세 분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니 다행히 다들 상태는 나빠보이지 않았고, 버릴 옷을 입고 온 것은 나뿐인 건가, 다들 멀끔하게 차려입고 있어서 나만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여를 달려 생활 치료소인 평택 라마다 호텔에 도착했다. 엠뷸런스와 버스로 이미 혼잡한 상황, 오늘따라 확진자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확진자가 이렇게 많은 것인지 입소 대기하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방호복을 입고, 고글까지 낀 채로 공무수행 중인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며, 호텔이 아니라 코로나 격리 시설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무전기의 띠링띠링 알림과 상황실의 다급한 안내 방송이 계속되는 여기, 일상은 사라지고
전염병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격리시설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보다 더 영화 같은 게, 지금 여기가 아닌가 싶고.
격리시설에 도착하면 배정 호수와 이름이 크게 쓰인 명찰을 달고 인적사항 확인, 체온, 산소포화도 측정, X_ray 촬영 등이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으로 세팅하고 나온, 떡진머리에 안경을 쓴 000호 77년생 코로나 확진자(여)일 뿐, 지루하기만 대기 시간을 조금이나마 흥미롭게 보내기 위해 ‘이 와중에 첫사랑 만나면 어떻게 될까?’를 주제로 절대로 일어나설 안될 일을 상상하며 지루하기만한 대기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다들 경증 환자들로 보였으나 온 가족이 무더기로 온 경우, 확진된 어린이를 위해 음성인 부모가 보호자로 따라온 경우, 아니면 나처럼 홀로 외로이 리되기 위해 고독한 표정으로 로비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연말연시에 코로나 확진이라는 안타까운 운명을 함께한 그들에게 속마음으로 안부를 건넸다.. 그 중 눈에 띄던 오십일도 안 된 애기를 업고, 기저귀에 분유에 짐가방을 양손에 든 젊은 애기 엄마에겐 화이팅을 백 번쯤 외치 주고, 죽일놈의 코로나를 만 번도 더 중얼거렸다.
미리 전날밤에 입소 시물레이션을 확실히 한 탓에, 신속한 X-ray 촬영을 위해 속옷 탈의, 반지, 목걸이, 귀걸이를 빼고 온 나는 문진 동선까지 이미 온라인 예습이 끝난 상태. 여유로운 마음으로 000이라는 방번호와 내 이름이 크게 쓰인 명찰을 달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또다른 000번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