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은 19살에 죽었다. 76년 2월에 태어나 96년 1월 1일에 죽었으니, 20년을 채 살지도 못했다. 꽃으로 치면 꽃몽우리가 툭하고 떨어진 것이다. 96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연예가중계뿐만 아니라 9시 뉴스에서도 앞다투어 보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지원이 떠날 즈음, 몇 개월 앞뒤로 또 다른 가수 2명도 영원히 우리들 기억 속에만 살게 되었다. 95년 11월에 김성재가 죽었고, 서지원이 떠난 지 약 일주일 뒤 김광석이 죽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 가수라는 점과, 사인이 자살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던 음악이 각각 달랐다는 것 뿐.
서지원은 미소년 발라드 가수로 기억되었고, 김성재는 시대를 앞서간 힙합 뮤지션이 되었다. 김광석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나이가 서른이 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다들 한 시대, 한 장르를 대표했던 인물들이라 내 세대에서는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세 사람 모두 팬덤이 있었기에, 많은 팬들이 그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수한 괴담과 뜬소문들이 돌아다녔는데,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라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다만 당시엔 그들의 죽음이 믿기지도 않았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 최근까지도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수많은 의혹들은 있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서지원은 10대, 김성재는 20대, 김광석은 30대에 죽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그들은 영원히 10대, 20대, 30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늙어가도 그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다. 가끔씩 라디오나 카페에서 그들의 노래라도 들려오면, 우리의 기억은 늘 역행한다. 그들이 박혀있는 그 시절로 돌아가 내 영혼에 압정을 박아놓고 한동안 매달아 놓기 마련이다.
이들이 남긴 '뜻밖의 죽음'에 대한 서글픔은 너무도 강력한 나머지, 내 개인의 기억과 이들을 연결시킬 때가 있다. 내게도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친구들이 몇 있다. 대학 입학 전 자살한 친구가 있었고,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20대 후반에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이제 이들이 몇 월 몇 일에 죽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서지원의 '내 눈물모아' 라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들이 떠오른다. 그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고, 이 노래가 그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음에도 단지 '우리가 원치 않았던 죽음' 에 대한 아쉬움이 '내 눈물모아'로 스며든다고나 할까. 그들과 함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고, 함께 '술잔'을 부딪혔으며, 웃고 떠들고 어울렸다는 이유로 그들은 내 기억 속에 산다. 이제는 슬픔조차 가신 그들에 대한 기억이지만, 그들을 떠올릴때면 나 또한 10대로, 20대로 돌아가는 듯 하다. 함께 늙어가는 현실의 친구들과 추억팔이를 하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차원의 그리움이랄까.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죽고, 영원한 꽃이 되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시들어가면서도 그들을 통해 가끔 온 세상이 정지된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슬픔보다 그리움으로, 때론 그 그리움조차 희망으로 차오를 때가 있다. 이처럼 우리는 떠난 이들로부터 오히려 더 큰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사람마다 떠날 때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우리의 부재 또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 서지원의 노래 '이별만은 아름답도록' 처럼 말이다.
당신에게 '서지원, 김성재, 김광석'은 어떤 기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