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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9층

나라면 나랑 안 산다...

아내가 영화 <신과 함께>를 보고 왔다. 자기가 죽어 지옥 가면 딱 갈 만한 곳이 있단다.


“여보, 나 죽으면 어느 지옥 가는 줄 알아? 나.태.지.옥.”


아이 친구 엄마들끼리 얘기하면 그들도 한결같이 이미 나태지옥 예약이란다.


나는 또 맨스플레인(나는 친절한 지식 전달이라 말하고 아내는 꼰대 짓이라 한다)을 시작했다.


“이 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원래 지옥문에서 나왔는데, 지옥문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단 말이야. 그런데 단테 신곡에 보면 지옥, 연옥, 천국이 나오는데 지옥편을 잘 보면 지하 1층부터 9층까지 있어. 그러니까 지옥은 9가지가 있는 거지...”


아내는 이미 딴생각 중이다. 그래도 나는 말을 잇는다.


“이 지옥에는 예수가 세상에 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다 형벌을 받아.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사람들이 다 지옥에 있지.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잖아. 신약이 나오기 전에 산 사람들이니까. 그럼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판결하냐 이 말이지.”


아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이제 관심 없다. 아내 귀만 가져도 좋다.


“그런데 지옥이란 것이 가만 보면 판결을 내려서 형벌을 받는 곳인데, 윤회에서 이미 판결을 받아서 지상의 삶을 사는 거란 말이야. 이게 업보야.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건 지난 생에서 뭘 잘못해서 그 벌을 지금 생에서 받는단 말이지. 그러면 여기가 지옥이랑 다를 게 없다는 거지.”


아내는 더 이상 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고개도 끄덕이지 않는다. 나는 흔들림 없는 아내 귀만 보고 말한다.

“그러니까... ...”


무려 9년 만에 나는 9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 머문 아내 '귀'만 끌어당기려고 나는 오늘도 맨스플레인한다.


이런 게 부부관계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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