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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Jul 06. 2020

결혼을 대하는 보존 과학자의 자세

결혼 생활 혹은 전시 후기

이 결혼은 오랜 갈등과 냉전으로 표면에 갈라짐은 물론 이염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우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하고 면밀히 원본의 색감을 연구하여 가장 최적의 재료를 찾았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붓과 면봉으로 케케묵은 서운함을 털고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힘들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별 수 있나요. 만족스러운 결과는 과정의 치열함에서 나오니까요.


오늘 청주 현대미술관에서 #보존 과학자 C의 하루 전시를 봤다. 보존 과학자는 손상된 미술품을 원상태에 가깝게 복원하는 작업을 한다. 단순히 보이는 컬러를 맞추는 데서 나아가 원재료와 작가의 의도까지 파악해서 과학자의 시각으로 분석과 복원을 차례로 수행한다.

전시에서는 보존과학자의 손을 거쳐 예전의 모습을 찾게 된 미술품과 그 과정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여줬는데, 보는 과정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결혼 생활에도 보존 과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의 대화와 카톡 메시지 영향이 컸다.

나로서는 열심히 한다고 최선을 다한다고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배려 없이 내 생각만 밀고 나가는 것으로 느껴졌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밀려오는 허탈함. 오늘 청주로 내려가는 길 내내 이 허탈함이 나를 덮쳤다. 얼마만의 나들이인데도 기분이 들뜨지 않았고 내내 카톡 메시지의 단어 하나하나 상대방의 목소리와 표정들이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마음에 얼굴에 들러붙어버렸다.


그 순간엔 화가 났지만 집을 나와 걷고 이동하면서는 화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나의 물음이 자리를 잡았다.


둘 다 만족하지 않는 다면 무얼 위해서 우리는 이러는 걸까?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문제가 생겨도 그 사람이 비축한 행복 에너지를 상대방을 위해 나눠줄 여유가 있을 텐데 둘 다 그게 아니라면 어느 쪽도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이다.

처음에야 대화로 풀고 선물도 하고 웃고 넘어가지만 동일한 사건 문제 다툼이 반복된다면 물감이 다 들뜨고 아교가 벗겨지고 모서리가 낡아 빠진 그림처럼 마모될 뿐이다. 몸도 마음도 같이.


전시장에는 오십 년도 더 된 그림을 복원한 사례부터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조소 작품과 유명 작가의 커다란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복원 사례가 있었다. 하나 같이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된 미술품을 보면서 보존 작업을 하는 전문가들을 왜 과학자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만약 결혼 생활에도 과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보고 현 상황을 어떻게 분석할까. 어떻게 하면 차음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 계획을 세울까. 어떤 과정을 거쳐 하나하나 때가 벗겨지고 오해가 풀리고 처음 그 색깔과 느낌을 찾을 수 있을까.


전시 마지막에 가서는 보전 과학자로 수많은 유명 작품에 새 숨을 불어넣은 전문가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다들 보전 복원 작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어요. 시간당 작업으로 계산되거나 무조건 물어내라는 케이스도 많았죠. 결국 하나하나 설득하고 보존 작업의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중요했습니다.


나는 과학자도 전문가도 아니니까 아직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일단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결혼 생활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서로를 위해 약속한 것들과 내 안에서 네가 차지하는 크기와 위치. 그리고 처음 그때의 우리의 마음. 일단 오늘은 그걸 좀 기억해 보고 생각해 봐야겠다.

#국립미술관청주 #청주현대미술관 #보존과학자C의하루 #결혼이란무엇인가 #부부란무엇인가 #처음느낌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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