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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니트 May 17. 2024

커밍아웃

오늘은 한달에 한번 있는 정기진료일. 요즘 주 고민은 멍한 증상과 무기력이다. 멍한 증상은 약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에너지가 낮은 건 그저 내 조울의 사이클에 따라 쳐지는 시기일 뿐이라고 한다. 굳이 멍함을 유발하는 약을 쓰는 이유는 기복을 없애기 귀해서다. 기복이 있는 것보단 차라리 일정하게 가라앉는 게 낫단다. 그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올라오게 만드는 과정에 있단다. 현 상태가 병의 진행기 어디쯤인지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급성기가 끝나고 회복하는 시점이란다. 치료가 1년 단위로 이루어진단다. 현재 시점 치료 기간이 1년 6개월이 지났다.


처음 치료를 권유받았던 것은 9년 전이다. 이직으로 상경해 홀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와중 유일하게 의지하던 연인으로부터 잔인한 말과 함께 실연을 당했을 때. 이딴 나약한 이유로 발병할 줄은 나조차도 상상 못 했다. 난생처음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드는 것에 깜짝 놀라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약물 치료. 잘 알고 있기에 시작하기가 더욱 망설여졌다. 우울증 환자라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첫 번째로 싫었고, 스스로 그 정도 상태라는 걸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상담 치료만 받으며 남편을 만나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상황이 안 좋아지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휘청였다. 유산과 출산, 직장 인간관계, 시댁과의 절연 등 크고 작은 이벤트를 겪을 때마다 상태는 더욱더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그러다 아이가 좀 크고 다시 좋아지나 싶더니 복직을 하며 또다시 안 좋아졌던 것이다. 급기야는 건망증과 무기력이 심해져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가 되었다. 중등도에서 중증 사이 어디 즈음의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내 상태를 받아들이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9년 동안 약물 치료를 미뤄오면서 서서히 악화되었던 것이다.


치료를 하면서 내 기분엔 사이클이 있고, 감정과 에너지 고저 폭이 넓으며, 외부 사건과 환경에 많이 휘청이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치료 기간이 얼마 정도인지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따금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젠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앞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후기를 계속 연재해 갈 계획이다. 굳이 비밀 아닌 내 비밀을 털어 놓으며 이 글을 쓰는 이유. 병을 수용하고 감정을 글로 옮기며 호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담당의는 운동보다 더 좋은 것이 글쓰기라고 조언했다. 내 목표는 완치다. 또한 이글로써 도움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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