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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Jan 20. 2021

부부싸움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feat. 연애 고자 엄마 아빠


하루는 남편이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절뚝절뚝.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가이드 경력 17년. 무리도 했지. 탈이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강도 높은 업무 환경이었다. 자신의 체력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던 그였지만 나이와 겹겹이 쌓인 혹사의 시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마치 나이가 들면 하나 둘 몸이 고장이 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나만은 그럴 리 없다는 굳은 믿음에 배신을 당한 듯 휘청거렸다.

무릎 치료야 이탈리아에서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검사하고 치료하는 것이 믿음도 가고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할 테다. 내가 먼저 한국행을 제안했다. 멍한 눈을 하고 무릎 테이핑을 하던 그가 눈을 반짝이며 나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한국에 못 가본 지 어느덧 3년째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매년 한 번은 가능했던 한국행을 몇 번을 건너뛰었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에 살면서 2년을 넘게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내친김에 바로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코로나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금 무릎이 아파 다행이다 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사달이 났으면 치료 시기도 놓치고 더욱 무리했을 테다. 잘됐어. 적절한 타이밍에 한국에서 치료하고 몸 관리도 하게 되었네.

그가 한국으로 떠나면 나는 이탈리아에 남아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한국에서 격리를 해야 하는 기간까지 고려하니 1월에 떠나 3 월이 되어야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나왔지만,  두 달 가까이 독박 육아 까짓 거, 할 수 있지. 뭐, 나 역시 진짜 한국이 그립고 가족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지만, 참을 수 있지. 아...그래도 무릎이 아픈 건 안쓰럽지만, 그래도.... 아이들 없이 혼자 한국에 들어가는 건 정말 부럽다. 아니지,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 그래도.. 그래도.... 한국에 가려면 난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할 텐데, 두 아이 데리고 들어가려면 돈이.... 얼마냐....? 이 시국에 그 돈을.... 에헤이 올해도 한국행은 물 건너갔구나....

호기롭게 한국 들어가서 치료 잘하고 푹 쉬고 돌아와 말은 던져놓고 막상 그의 귀국 날짜가 다가오자 감정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한국에 가고 싶은 맘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두 달 독박 육아에 대한 압박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이 마음을 꿈에도 모른 채 한국행에 대한 설렘으로 나날이 얼굴이 좋아졌다. 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하다고 했던가? 눈에 띄게 절뚝거리던 다리가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행에 대한 기쁨은 조금 감추고 그래도 남는 사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내가 가라고는 했는데 말은 그래도 마음은 괴롭다고 내 입으로 고백하긴 쪽팔린다. 배가 너무 아프니까 티를 내지 말아 달라고 하기엔 너무 없어 보이잖아. 그래서 눈치를 좀 채라고 짜증을 툭툭 던져도 영 모른다. 쟤가 왜 저럴까 어떻게 기분을 풀어줄까 고민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그는 나의 감정이 격해지면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곳에 남을 나에 대한 배려는 없어?”

이 말을 던지면 미안해할 거라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그가 답했다.

“네가 가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못 마땅한 거야? 나 한국 가는 걸로 마냥 기분 좋지 않아. 남은 당신이랑 아이들 걱정해. 그러는 당신은 나에게 얼마나 배려했는데? 나 눈치 봤어. 애들 책 읽어 주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뭐 먹고 싶다고 해서 요리하고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당신은 기분 안 좋은 걸 매번 다른 사람에게 풀려고 하는데, 나 정말 싫어.”

“가는 게 못 마땅하다는 게 아니잖아. 가라고. 내가 당신에게 한국으로 가라고 한 것이 내가 당신에 대한 배려였고 이제 당신은 남은 나에게 대해 생각해 달라고. 내가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해서 해주는 거 말고 내가 떠나기 전에 이런 거 해주면 좋아하겠다. 당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 달라는 거야. 그리고 한번쯤은 그냥 져 주면 안 돼? 꼭 내가 가진 감정이 잘 못되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만 해? 그냥 다 당신이 잘못한 걸로 해주면 안 돼? 다 미안하다고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고 말이라도 그렇게 해줄 순 없는 거야??? 그냥 다 당신이 미안한 걸로 해. 그냥 다 당신이 배려 못한 걸로 해 달라고!!!

한바탕 쏟아냈다. 그는 영원히 모를 것 같다. 절대 내 마음을 그가 먼저 들여다보려 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런데 정작 나도 정확하게 그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답을 모르니 그저 남편을 쥐고 흔드는 수밖에. 그도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화는 오늘도 널을 뛴다.


불똥은 아이들에게 튀었다.

난장판인 거실.

다음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나와서 거실 치워!!”


신나게 유튜브를 보던 두 아이가 쭈뼛쭈뼛 나와서 장난감을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쪼그리고 앉아 주섬주섬 치우던 아이가 한숨을 쉬었다. 어쭈 한 숨을?! 화가 끓어 오르던 그 순간,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역시 엄마는 나 없이는 안된다니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거짓말처럼 화가 누그러 졌다. 끓어 넘치던 화가 어이없게 식어버렸다. 나의 화를 아이가 튕겨냈다. 웃음으로.

깨달았다.
남편에게 원한 것이 이거였구나.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그가 튕겨주기를 원했구나. 화를 화로 받지 않고 짜증을 짜증으로 받아않고 이 감정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켜 주길 간절히 바랬구나. 역시 넌 나 없이는 안돼, 하고 그가 안아주길 바랬구나. 가기 전에 나와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말해주길 기다렸구나. 네가 이렇게 어렵게 마음을 먹고 한국에 다녀오라고 이야기해 줬구나 고맙다고 말을 해주길 원했구나.

7살도 아들은 아는 것을 아비는 모른다. 

아... 제발, 아들아, 아버지께 연애 좀 가르쳐 드려라.

장난감을 다 치운 아이가 동생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내가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주려는 듯.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화내서 미안해. 곧 있으면 아빠가 한국에 들어가잖아. 아빠가 한국 가고 엄마가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좀 힘들었어.”



엄마 힘들었어? 사실 나도 아빠가 한국에 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 내가 도와줄게. 설거지도 하고. 엄마 울어?”

아이들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남편이 후에 전하길 이 일이 있고 아들이 따로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아빠 한국가도 엄마 생각 많이 해줘.”


라고...

그가 말했다.


"내가 이안이에게 배워야겠어."

며칠 뒤, 남편이 요리를 하다 달걀 프라이를 뒤집는 기술을 선보였는데 그거 보고 아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와!!! 이렇게 멋진 아빠가
한국에 가면 슬퍼서 어쩌지?


순간 남편과 내가 눈이 딱 마주쳤다. 뭐랄까... 남편의 눈빛이 이게 내가 너에게 바라는 멘트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대박, 아내가 저렇게 말하면 내가 남편이라도 막 고맙다고 우러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배워서 되려나?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 같다. 이제 보니 남편이 아니라 내가 배움이 시급하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을 그는 왜 안 바라겠는가? 17년을 일했고 작년 한 해 가이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수입을 만들겠다고 매일 새벽 카메라를 들고나가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한 그다. 치료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수고한 20년 가까이의 시간에 대해 충분히 받아 마땅한 보상이다. 그런 그를 맘 편히 보내주지 못하는 나도 참 못났다.

며칠간 우린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싸움의 반복 속에서 서서히 접점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우린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아들의 말을 통해서야 우린 겨우 이 싸움을 끝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서로가 요구한 것을 그냥 해주면 된다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주면 된다는 것을.

화가 충돌하지 않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가 혹여나 표현하지 못했다 해도 진심을 믿어주기를 그는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어도 계속 표현해주기를 서로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말로 하기로 했다.

막장으로 치닫던 부부의 세계가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부부 싸움의 끝이 보인다.


부부싸움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들아.


배움의 길은 아주 긴 여정이 될 것 같지만 제발 포기하지 말고 연애 고자 엄마 아빠에게 기술을 많이 전파해주렴.


진짜 부탁이야.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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