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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Jan 26. 2021

아이들을 나눕시다.

우리 아이들이 이 것을 원할까요?

저녁을 먹고 휴대폰을 보니 네로니 엄마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이번 학교 오픈 데이 기간에 다른 초등학교 구경을 해보고 싶은데 너도 관심 있으면 나랑 같이 가볼래?


이탈리아의 초등학교 시스템은 한국과 조금 차이가 있다. 만 6세 입학, 총기간은 5년이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5년의 기간을 모두 더하면 한국보다 1년이 더 길기 때문에 졸업할 때의 나이는 한국과 같다.) 그중 가장 큰 차이는 초등학교 5년 동안 반과 담임선생님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학을 오고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사가 잦지 않고, 한다 하더라도 한 동네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이유에도 크게 작용한다. 초등학교 입학 설명회 때 한 해의 목표가 아니라 5년의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신선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 엄마의 입장에선 매년 무언가를 달성하기보다 5년을 한 과정으로 이어간다는 것이 큰 안심이 되었다.


모든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존재하겠지만 코로나로 반년의 휴교를 경험하면서 5년간 반 친구들이 같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친구가 되기 위해 주어지는 5년이 감사하다. 이는 나에게도 똑같이 작용했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학부모들과 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다른 학교를 알아보고 싶다는 네로니 엄마의 문자 메시지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야? 학교 바꾸려고?!”


“그냥 다른 학교는 어떤지 궁금해서. 아이들 반 학생수가 29명이잖아. 너무 많아. 요즘 네로니 공책을 보면 선생님이 제대로 봐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안 그렇겠어? 아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불가능하지. 방치되는 애들이 생기지 않겠어? 그리고 프란체스코....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 방해하고 돌발 행동하고.... 안그래도 반 아이들 수도 많은데 프란체스코까지....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될 건데 난 현재 학교에 좀 불만족스럽네.”


통화를 마쳤다. 이탈리아 초등학교의 평균 학생수는 20명 남짓. 그에 비해 지금 아이의 반 학생수 29명은 많은 숫자다. 이는 초등학교 시작 전, 이미 숙지된 사항이었고 당시에도 많은 불만을 야기했지만 결국 모두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아이들도 잘 케어할 수 있다는 학교의 확신 때문이었다.( 학교야, 그렇게 말해야지 별 수 있나...)


난 이 숫자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솔직하게 그게 왜 공분을 사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반에 55명, 심지어 학생수가 너무 많아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했던 라떼세대로 29명은 아주 이상적인 숫자로 생각되었다.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후 몇몇 엄마들은 불만이 생기면 이 숫자를 문제 삼곤 했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나 역시 이 아이의 이야기는 이안이를 통해 종종 전해 들었다. 수업 중 돌발 행동을 하는 아이. 자주 울고 학교 공연 중 중간이 이탈을 하기 일쑤에 체육 수업은 아이로 인해 자주 중단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중반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엄마 컴퓨터 시간에 프란체스코가 울었어. 선생님이 컴퓨터 켜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한 거야. 애들이 모두 프란체스코가 그랬다고 했어.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아니라고 울었어. 내가 프란체스코한테 가서 말해줬어. 난 네가 그러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이안이는 왜 프란체스코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냥 그런 거 같았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알아? 우리가 친구가 되었어! 누굴 도와주면 친구가 되는 거야? 내가 프란체스코를 도와주고 믿어줬더니 친구가 되더라고.”


같은 반 아이들과 내 친구의 경계가 확실한 아이다. 같은 반이면 모두 친구 아니야? 하고 물으면 모두가 친구는 아니라고 답하는 아이에게 한 명의 친구가 더 생겼던 날이다. 그날 왜 아이가 프란체스코를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날의 아이의 말이 좋아 기록해 두었었다. 신기했던 건 이전까지 이안이는 언제나 프란체스코를 이상한 아이,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로 표현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 날 이후로 난 이안이를 통해 프란체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의 반이 지나는 1년이 지난 현재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에게 물었다.


“만약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면 그러고 싶어?”


“왜? 싫은데 나 친구들 모두 여기 있는데.. 그리고 바뀌는 학교에서 내가 안 배운 걸 하고 있으면 어떡해? 난 모르는데?”


“음.... 프란체스코 어때?”


“좋아”


“프란체스코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어?”


그런 애들도 있을 수 있지.
그런데 그거 잘 몰라서 그래.
프란체스코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냥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반의 학생수가 많은 것이 문제 삼으면 문제고 별 것 아니다하면 별 것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코로나 시대에는 장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이외에는 친구를 따로 만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금. 다양한 아이들과 부대끼고 친구가 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지 않은가? 그리고 솔직한 마음은 이 이탈리아에서 초등교육이 학교마다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있다하더라도 이 시기에 아이들 서로가 주고받는 배움보다 더 클까 싶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말했다. 답은 나왔네. 이안이는 여기를 좋아하네.






그리고 몇 주 뒤, 반 단톡방에 올라온 투표건.


9월 ,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시점에 29명의 아이들을 두 반으로 나누자는 의견이 나왔고, 단톡방에서 투표를 진행해 찬성이 과반수를 넘기면 학교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앞의 이야기와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학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야 학교에서 계속 만날 거고. 외국인 부모의 입장에서도 입장을 떠나서도 더 세심하게 케어 받으면 땡큐지.


이번에도 이안이에게 물었다.( 이미 단톡방에는 찬성 의견을 남긴 후였다.)


“만약 이안이 반을 두 반으로 나누어야 한다면 네 생각은 어때?”


“왜? 내 친구들 모두 여기 있는데.. 아, 여자애들이 다른 반에 가는 건 좋아! 걔들은 자꾸 때린단 말이야. 그런데 난...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싫은데....”


반대하는 입장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반길 거라고 생각했다.  압도적인 차이로 찬성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투표는 박빙이었다. 여러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초등학교가 시작되고 단톡방에서 단 한 번도 의견을 어필한 적 없는 카를롯타의 엄마가 장문의 글을 남겼다. 카를롯타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다.


여러분, 이 제안 자체에는 이유가 있을 테지요. 그러나 이 의견이 타당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생겨요. 아이들을 어떻게 나누려고요? 목록을 만들어 둘로 나눌 건가요? 2년을 함께한 아이들을 나누는 그 기준은 누가 만드나요? 그리고 과연 이것을 아이들이 원할까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거리에 분리까지 더하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요? 이 의견에 대한 솔직한 마음은 반반이지만 지금 전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루카의 엄마도 글을 남겼다. 루카는 반에서 생일이 가장 늦고 어리광이 심한 소년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갔죠. 전 반 학생수가 아이들 개개인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잘 알지 못하고 아이들을 나누는 것이 수업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도 제대로 알지 못해요. 분명 30명에 가까운 숫자는 많은 수가 맞아요. 그러나 이미 동의한 내용이잖아요. 선생님의 업무량이 많다는 것에도 부정할 순 없어요. 하지만 만약 아이들을 나눈다면 앞으로 루카를 아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걸 원할까요?


그리고 죠반니의 엄마의 글을 마주했다.


창비나 비룡소에서 출간된 청소년 문학에서나 등장할 법한 문장. 현실에 기반은 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관객들은 "에이~저런 말을 하는 어른은 현실에 없어."라고 말하는 성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였다. 누가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해? 누가 진짜 저걸 믿어? 태어나서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을 본 적도 없고 현실에선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문학과 예술에서나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비현실적인 이 문장을 아이의 학부모 단톡방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Voglio solo dire di avere fiducia nei nostri figli...... ci stupiranno!!


우리 아이들을 믿어요.
아이들은 우리를 놀라게 할 거예요!!


투표 결과가 나왔다.


11 찬성

15 반대

3 기권


부결되었다.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페라라(Antonio Ferrara) 의 책, 마음의 권리(Diritti al cuore) 의 마지막 문장이다.


Faceva un bel freddo, ma ormai ero arrivato a casa. Ho suonato al citofono, e mentre aspettavo che mi aprissero ho pensato un'ultima cosa: ho pensato che, se uno il mondo lo fa giusto per un bambino, lo fa giusto per tutti.

 추워졌을땐 이미 집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세상이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한다면 그건 모두에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Antonio Ferrara [ Diritti al cuore ]


어른에게 옳은 세상은 어른에게만 옳지만 아이들에게 옳은 세상은 모두에게 옳다. 한 소년이 행하는 친절을 방해라고 이름 붙이는 어른이 어린이의 세상을 나누려고 했다. 나누고 나누지 않고, 무엇이 더 나았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당사자인 아이들을 배제하고 결정해선 안 되는 거다. 적어도 어른의 상식으로 옳다고 생각한 것이 아이들에게도 옳다는 생각은 옳지 않았다. 


거리두기와 비대면에 지쳐가는 지금, 학습효과라는 이유로 분리를 시도했던 어른들을 아이들은 끝내 모르면 좋겠다. 어른을 믿으라고 말하면서 어린이는 믿지 않은 우리를 알지 못하길 바란다.


어른들의 공격은 불발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세상은 무사히 내일로 나아간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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